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김우남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행복한 결말은 유년 시절 즐겨보았던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어른이 되어서도 영화나 소설에서 행복한 결말을 찾고 있지만 팍팍한 현실처럼 그것은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

어차피 행복한 결말도 주관적인 것이고 명백하게 밝혀지는 결말도 없는 마당에 그 모든 것은 독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약자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단면

<거짓말>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선은 중학생 소녀다. 부모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외삼촌댁에 얹혀살고 있다. 이쯤 되면 주인공이 이 집에서 얼마나 ‘찬밥신세’인지 대충 가늠이 될 것이다. 외할머니는 아들내외를 의식하여 지선에게 더 혹독하게 꾸지람을 하기 일쑤다. 지선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다만 자신의 처지가 서러울 따름이었다.

용돈을 주지 않는 어른들이기에 지선은 스스로 용돈을 벌어야 했다. 일제 시디플레이어나, 시디도 여러 장 사고 싶은 지선은 동네 세탁소와 반점 주인에게 몸을 허락하여 용돈을 마련한다. 겨우 중학생의 나이에 말이다.

엄마가 지어준 별명 ‘햇님’은 왠지 지선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험한 세상의 이치를 다 경험하게 되는 아이, 시간만 나면 게임랜드에 달려가 게임을 하는 것으로 소일하는 지선이 가엾다.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의 천안댁도 가엾기는 마찬가지. 아이가 어려서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나가고 혼자서 아들 하나를 근근이 키워왔다. 간병인 노릇을 하며 지금껏 지하와 반지하를 전전하며 살아온 한평생이 생각하면 눈물겹다.

이번 환자는 돈깨나 입는 집 양반이어서 꼼짝 못하는 노인네 신세지만 아들이나 며느리가 영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환자는 천안댁만 찾아댔다. 천안댁이 환자를 열심히 돌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친척들은 천안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행여 재산이라도 노리고 노인네 곁에 철썩 들러붙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처음에 천안댁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죽기 전에 한번쯤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다가 가고 싶은 마음도 오롯이 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들이 벌이가 시원찮아 임신한 며느리가 유산을 해 목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잘만하면 노인네가 귀찮은 아들과 며느리가 제발 영감을 돌봐달라고 한몫 챙겨주며 노인네를 떠맡기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혼자 해보기도 했다.

여하튼 기름값을 아끼려고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는 반지하방에서 겨울을 난다는 게 너무 끔찍해 천안댁은 어떻게든 난방이 기가 막힌 병원에서 겨울을 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있는 특실을 기웃거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천안댁은 할일없이 12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영감이 잠을 자거나 하는 틈을 타 잘 꾸며진 특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천안댁은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 12층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천안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떳떳한 천안댁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했다.

점점 영감의 건강은 호전되었고 며느리가 통근치료를 의사와 상의해보겠다는 이야기를 천안댁에게 흘리자 천안댁은 두려웠다. 당장 간병인 노릇을 그만두면 다시 반지하방으로 돌아가야 하며 일자리를 잃으면 아들에게 약속한 돈도 마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영감을 보았을 때만큼만 안 좋은 상태로 돌리기 위해 침대에서 영감을 밀어버린다. 그러나 왠일인가. 영감은 곧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만다.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치게 된 천안댁은 그만 아연해졌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남모를 폭력

<비너스의 꽃바구니>에서는 가정 폭력을 다루고 있다. 천사표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은 언제나 차가웠다. 그런데 왜 그토록 착한 천사표 언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허우대 멀쩡한 형부란 작자는 일 년에 반은 언니를 구타했다.

그 세월동안 언니는 왜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을까. 친정 식구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서라고 했지만, 그것이 결국은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게 된 때에는 이미 심신이 황폐해진 다음이었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도 마찬가지. 어린 나이에 이모부에게 성폭력을 당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꾹꾹 눌러 기억을 압사시켜버리려 했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머니에게 이미 고인이 된 몹쓸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다소 식상한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거짓말>,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비참한 상황들은 몇 겹씩 겹쳐 나타나고 아무도 그 현실을 타계해줄 수 없다는 사실만 번번히 확인하게 된다. 이 외에도 <문수산 가는 길>, <내가 만난 어린왕자>와 <파워 게임> 역시 힘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비루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김우남의 첫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는 사회적 약자의 고단한 삶을 내밀하게 그린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소외된 자들의 삶을 통해, 야비한 권력이 판치는 세상을 통해 저자는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독자들에게 생각의 골을 깊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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