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김윤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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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인물들이라면 애초에 주인공으로 발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윤영의 두 번째 소설집 <타잔>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설 속에 투입되어 무명배우 자격으로 소설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타잔>에 실린 8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두 작품은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와 <검사와 여선생>이었다.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 부부가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괜찮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타국에서는 그에 합당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갈수록 남편은 힘이 들었던 것이다. 불만은 쌓여갔고 그것은 몸무게가 느는 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비해 아내는 점점 능력을 발휘하여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직장을 옮기게 될 만큼 만족스런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급기야 남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아내는 그러기 싫었다. 캐나다 이민도 남편의 뜻이었고 재이민도 남편의 뜻이다. 아내에게 더없이 좋은 남편이었지만 이제 남편은 예전의 남편이 아니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결과만 통보하는 남편을 아내는 이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비만인 남편의 돌연사로 보았는데 결국 아내는 남편을 살해하고 만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면밀한 아내의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그 사실을 환기하게 될 것이다.

이민생활이 아무리 만족스럽다할지라도 이건 너무했다 싶지만, 남편과의 남은 생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아내는 극단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재이민 결정만 없었더라도 그냥저냥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들 부부의 문제를 한 가지로 집약하기에는 어렵다. 저자는 살인사건을 평온한 일상의 일부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고 있음이 섬뜩했다.

'검사와 여선생'

잘나가는 마담뚜를 엄마로 둔 주인공은 넉 달마다 한 번씩 남자를 갈아치우는 집에서는 망나니로 통하는 인물이다. 아빠는 땅 장사, 엄마는 중매질로 돈을 불려 살림은 넉넉했다. 사촌 언니 지인은 교사로 애들을 수시로 불러 거둬 먹이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애들 공납금을 대신 내주기도 하는 보기 드물게 착한 교사였다.

하나 밖에 없는 언니의 외동딸인 지인을 엄마는 끔찍이 위했다.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언니와 둘이 내려와 자매애가 각별한 이유도 있었지만 일찍 엄마를 여윈 지인이 가여웠기 때문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좋은 상대를 조카에게 찾아주고 싶었던 엄마는 열심히 상대를 찾아 지인에게 맞선을 주선해주었다. 지인은 이모의 성의를 생각해 마지못해 한두번 만나다가는 번번이 상대에게 퇴짜를 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은 자리라며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지만 지인은 사람을 보는 나름의 안목이 있었던 것인지 좋은 자리들을 다 마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망에 검사가 올랐다. 엄마는 이때다 하고 지인에게 소개 시켜줬고 웬일인지 지인은 석 달간 강 검사를 만났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인은 강 검사를 데리고 이모의 집을 방문하기까지 하여 주인공은 그날 코에 큰 점이 있는 강 검사를 보게 되었다.

강 검사의 코에 있는 점마저 ‘나 소심해요’하고 외치는 듯하다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형적으로 소심해 보이는 강 검사에게 어떤 문제라도 있는 걸까. 이모에게 강 검사를 소개시키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지인은 강 검사를 그만 만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왔다. 일이 잘 되어 결혼하나 싶었는데 엄마는 앓아누울 지경이 되었다.

그 후 검사는 뚱뚱하고 괴팍한 성격의 홍 선생과 결혼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검사가 밑지는 결혼이었는데 남녀의 일은 실로 알 수 없는 법이었다. 그 후 두 달이 지나자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홍 선생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제발 이혼해달라고 애원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검사가 성도착자라는 것이다. 그런 내밀한 정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지인이 귀띔해준 것이었다.

이럴 수가. 강 검사가 취향이 독특하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둘은 이혼하지 않고 살아가고 지인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홀아비 학교 선생과 결혼을 선언했다. 이번에 엄마는 진짜로 앓아누웠다. 행복하냐는 사촌 동생의 물음에 지인은 사람들이 다 날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조건에 맞추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 조건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조건은 단지 조건일 뿐이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결혼도 불행할 수 있고,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결혼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남들 눈을 의식해 살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단편마다 굵직한 주인공들..

표제작 <타잔>의 주인공인 마장동 김씨는 파산한 뒤 태국의 정글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오랜 세월 소의 목을 따며 번 돈으로 아끼고 또 아끼고 살았지만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의 허영과 낭비벽이 한 사람을 쇠락의 낭떠러지로 밀어 넣었다.

<집 없는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의 수지는 입양아로 자라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해외입양에 대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며 넘을 수 없는 인종 문제나 사회와 문화의 이질성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주인공을 통해 하나 같이 우울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소설이 읽히는 계절이 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독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윤영의 <타잔>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되는 것은. 그러나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 모두 오래 기억될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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