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유는 문체가 아름답지 못해서도 아니었고, 문장 호흡이 나와 일치하지 않아서도 아니었으며 재미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책과 오랫동안 호흡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카슨 매컬러스가 스물 셋에 완성한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슬픈 까페의 노래>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슬픈 까페의 노래>가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지름길이라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비록 돌아가서 멀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길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뉴욕 까페의 주인 비프와 귀머거리이면서도 벙어리인 싱어, 늘 피아노 곡 같은 것이 마음속에 있는 소녀 믹, 흑인들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흑인 의사 코펄랜드, 사회주의자 제이크가 그들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은 뉴욕 까페에서 종종 만난다.

싱어는 그리스인 친구 안토나포울로스와 함께 살았다. 싱어는 세상 누구보다 그를 아꼈고 그들의 우정은 가족간의 사랑 그 이상이었다. 언제나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고 어떤 불평이나 고민도 그들을 피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고난이 찾아온다. 안토나포울로스가 병이 나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후 그리스인 친구는 변했다. 쉽게 화를 냈으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그리스인의 사촌은 그를 요양소에 보내기로 했고 싱어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낸 싱어는 한동안 슬펐지만 곧 이성을 찾고 평소처럼 행동한다. 주기적으로 그리스인 친구를 만나러 가면 되니까 외로움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벙어리 청년은 우스개 소리가 나오고 몇 초가 지나면 싱긋 웃었다. 그러다가 우울한 말이 나오면 좀 늦다 싶게 미소가 사라졌다. 그에게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남다른 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싱어의 눈매는 누구도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도 짐작 못한 것들을 아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보통 사람과 달랐다." - 본문 중에서

싱어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모든 사람들의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술 모양을 통해서 또한 그들이 적어주는 글씨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물론 그도 글씨를 적어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사람들은 모두 싱어를 좋아했고, 고민이 생기면 그를 찾아왔지만, 싱어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믹은 오케스트라 곡을 만들고 싶은 꿈 많은 소녀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는 소녀의 머리 속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있다. 형편이 좋지 않아 피아노도 없고, 레슨을 받을 수도 없지만 언젠가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믹은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싱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음악과 함께 제일 먼저 그를 생각했고, 옷을 입을 때면 어디서 그를 보게 될지가 궁금했다. 복도에서 그와 마주칠 때 좋은 냄새가 나도록 언니의 향수나 바닐라 액을 뿌리기도 했고, 출근하는 그를 보기 위해 학교 지각도 불사했다. 그렇게 믹은 가족보다 싱어를 더 사랑했다. 믹은 싱어에게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 믹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비프였다. 언제부턴가 비프의 마음속에는 믹이 맴돌고 있었다. 믹이 뉴욕 까페에서 사먹는 간식들을 공짜로 주고 싶었으나 마음을 들킬까봐 그럴 수는 없었고 매일 방문하는 믹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프는 만족했다.

그렇게 사랑의 화살표는 한 쪽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싱어는 오로지 그리스인 친구 생각뿐이었다. 주기적으로 친구를 방문했던 싱어는 어느 날 그리스인 친구를 방문하러 갔다가 뜻밖의 소식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그리스인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싱어는 집으로 돌아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싱어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기게 되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슬픈 건 믹이었다.

그렇게 소설은 막을 내린다. 핍박받는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흑인 의사 코펄랜드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제이크의 비중은 물론,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뉴욕 까페의 주인 비프의 역할도 크지만 어쩐지 나는 전지전능하게 까지 비춰지는 가엾은 싱어와 믹, 비프에게 더 마음이 갔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외로운 영혼들의 이야기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당장 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내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어서, 나와 같은 인종이 차별 받는 사회가 싫어서 등 외로움의 이유는 다양하다.

결국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안에 살지만 다른 이유로 저마다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옛날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의 정서와 배치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소설은 분명 좋은 소설이다. 책을 통해 우리는 외로움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인권, 인간 소외, 가난, 사랑을 환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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