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씁쓸한 초콜릿>은 이른바 성장소설이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열다섯의 나이로 돌아가 주인공 에바의 눈높이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에바는 김나지움에 다니는 학생으로 스스로를 ‘코끼리’라고 일컬을 만큼 살이 찐 모습이다. 조금 살찐 사람도 다소 마른 사람도 있기 마련인 세상이지만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쓸 나이에는 살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에바는 세상과 소통하기를 꺼리며 스스로의 집에 자신을 가둔다.

수업시간 중 선생님이 호명하더라도 에바는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푹 숙여 버린다. 체육 시간 조를 짤 때에도 마찬가지. 에바는 운동화 끈을 일부러 풀어 다시 처음부터 꿰고 앉아 있기 일쑤다. 에바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다른 아이였다. 말하자면 남들이 뚱뚱한 자신을 좋아할 리 없으며 비웃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문제 중의 문제인 이 문제 외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바로 비곗살이었다. 에바와 주변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이 역겹고 물컹물컹한 지방층이 문제였다. 비곗살은 에바에게 완충지대이자 골치였다. 모든 게 오로지 비곗살 탓이었다. 비곗살은 비참, 소외, 냉대를 의미했으며 조롱과 두려움, 창피함을 뜻했다. - 본문 중에서

그렇게 살찐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이 힘들면서도 에바는 초콜릿이나 푸딩, 케이크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에바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우울할 때면 더 그랬던 것 같다. 마음의 허기가 곧바로 몸의 허기로 이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바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미헬. 미헬은 에바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동갑내기 소년이다. 미헬은 남동생만 있는 에바와는 달리 형제가 많아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학교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이 아니라 졸업 후 직업 훈련을 거쳐 취업을 하게 되는 하우프트슐레에 다닌다.

무엇보다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하는 미헬이 에바는 좋았다. 미헬에게는 다소 뚱뚱한 모습의 에바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지만 오직 나에게만 특별한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미헬은 아마 에바의 내면에 반했던 것 같다. 그동안 미헬이 만나왔던 여느 여자아이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씹는 것보다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신선한 빵에 바른 차가운 버터만큼 부드러운 게 어디 있을까?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소금보다 좋은 양념이 어디 있을까? 씹는 것, 입 안에 든 빵을 으깨어 삼키면서 그와 동시에 손에 쥔 빵을 바라보는 것, 또 한 입 아직 먹을 게 남아 있다는 풍요의 감정을 느끼는 것, 이런 것들 외에는 어떤 행복도 찾을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우리에게 있는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서도 식욕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도 배가 고프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류에 속하고 일단 배가 채워져야 무엇이든 할 의욕이 생긴다. 배가 고프면 만사가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내 몸이 남들보다 뚱뚱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건강상의 이유나 또다른 이유로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뺄 이유는 없다.

그 옛날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풍만한 몸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만큼 미의 기준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유동적인 것이다. 나의 주관만 확실하다면 시류에 끌려 다닐 필요는 없을 텐데.

중요한 것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가 하는 것이다. 에바는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미헬과 전학 온 친구 프란치스카의 영향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찾게 되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는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에바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뚱뚱한 가슴과 뚱뚱한 배, 뚱뚱한 다리를 가진 뚱뚱한 소녀가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 소녀는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약간 눈에 띄긴 하지만, 그렇기 하지만 못생기진 않았다. 에바는 뚱뚱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뚱뚱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도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었다.

대체 아름답다는 건 무엇일까? 패션잡지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생긴 여자들만이 아름다운 것일까? 다리가 긴, 날씬한, 매력적인, 가느다란, 우아한 … 이런 낱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지방은 녹아내리지 않았다. 에바가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녹아내린 지방이 악취를 풍기며 배수구로 흘러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에바는 갑자기, 자신이 원했던 에바가 되어 있었다. 에바는 웃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외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에바는 마음의 문을 열어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결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열등감에 짓눌려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개개인의 몫이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유독 자신에게는 그 이상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들이다.

미리암 프레슬러의 <씁쓸한 초콜릿>은 어른이 되어가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평범한 일상을 드라마처럼 독자들에게 펼쳐 보인다.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에서 진한 감동을 받게 된 기분이랄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씁쓸한 초콜릿>은 청소년은 물론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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