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적이기보다는 사색적이며, 실용적이기보다는 관념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덧 우울한 내성적 문학소년이 되어 있었고, 알지도 못하는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혼탁한 가운데서나마 나름대로 세상과 인간과 삶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도덕적 및 미학적 감수성을 길러가고 있었다. ... 정신적으로는 염세적인 동시에 낭만적 이상주의자, 허무주의자인 동시에 심미주의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 당시 내가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막연한 대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을 더듬어 왔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