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탄생 - 대한민국에서 딸들은 어떻게 여자다운 여자로 만들어지는가
나임윤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관습화 된 일상 속에서 비판 의식 없이 살아가기 쉽다. 어떤 한 성이 우위에 있을 수 없음에도 성차별적인 말과 행동이 아직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는 것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훈육돼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앞으로 아이를 갖고 교육을 담당할 부모, 그리고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나임윤경의 <여자의 탄생>(웅진 지식하우스)은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다.

기저귀를 갈 때 남자아이는 '고추'를 드러내놓고 자랑스레 갈아준다. 그런데 왜 여자아이는 행여 누가 볼 새라 재빨리 이름도 없는 그 부분을 가려주는 걸까?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나 동등하게 대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진관에서는 남자아이가 벌거벗은 채 자랑스레 앉아 있는 첫 돌 기념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왜 여자아이에게는 인형만 선물하는 것일까

옷이나 장난감을 선물할 때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꼭 확인해서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여자아이에게는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을, 남자아이에게는 자동차나 변신 로봇 같은 장난감을 선물한다. 그러나 저자 나임윤경은 이런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남자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노는 자동차·비행기·로봇·집짓기 블록 등은 공간지각 능력·추리력·상상력·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런 것들이 남자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닌 이상 여자아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장난감을 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하는 훈련이 남자아이에게도 필요한 이상 인형을 남자아이한테서 멀리 둘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부엌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인 만큼 부엌과 관계된 장난감 역시 남자아이에게 선물로 주어져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남자아이는 파란색 계통의 옷을, 여아에게는 분홍색 계통의 옷을 입혀 굳이 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것은 아이에게 무의식중에 여자다운 색, 혹은 남자다운 색을 강요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인식 속에 '남자의 색', '여자의 색'이 굳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모양이 다르듯 좋아하는 색도 다 다르기 마련인데, 그 많지도 않은 색을 남성성과 여성성의 색으로 이분할 필요가 있을까. 어린아이에게는 다양한 색의 옷을 입힐 필요가 있고 아이가 자라면 자연스레 자신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혀주면 될 것이다.

여자아이의 경우 어릴 때부터 부모가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면 이것이 자연스레 아이에게도 이입돼 외모에 상당한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한다. 아이의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바로 부모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가벼운 행동 하나라도 거듭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누구를 위한 '긴 생머리'인가

저자는 대부분의 여성이 어깨를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르는 경향이 있는데 노동에 적합한 머리 모양으로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긴 머리는 묶은 머리나 짧은 머리보다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손이 머리에 가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수업 시간 중에는 물론이고 회의 시간에도 긴 생머리의 여성은 머리카락을 만지는 행위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하고 있다. 그것은 강의나 회의에 그만큼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식사할 때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여성이 있을까.

저자는 언제 어디에서든 활동하기 좋은 머리모양이나 의복이 좋다고 강조한다. 당사자가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 "자신이 사장의 입장이라면 어떤 여성을 고용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게 나올 것이다.

또한 저자는 결혼식장에서 흔히 "안경 낀 신랑은 볼 수 있는데 왜 안경 낀 신부는 없는가"라고 묻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여성 앵커 중에도 안경 낀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시력이 월등히 좋아서 그런 건 결코 아닐 것이다. 남자는 이지적으로 보여도 상관없지만 여성은 이지적으로 보일 필요는 없고 다만 아름답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일까?

저자는 여학생들에게 그들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줌마 정서를 내면화하라고 가르친다. 즉,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여성들의 앞마당쯤으로 생각하고, 남자들의 통제를 가볍게 무시하며 살도 찌고, 맨얼굴로 돌아다니자"고 제안한다. 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부합하려 애쓰지 말 것이며, 남자들이 원하는 방식의 수동성을 몸에 간직하려고 기를 쓰고 미시족이 되지 말자"고 말한다.

여성 스스로 깨우쳐야 할 부분과, 남성들이 전근대적인 가치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남자와 여자의 불협화음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가벼운 일상을 의미 있게 풀어낸 <여자의 탄생>은 참으로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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