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가 사랑한 밀레 - 반 고흐 삶과 예술의 위대한 스승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책을 읽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기독교 신자가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없듯 좋은 책과 만나면 누군가에게 권해 주어야 하는 것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다. 더군다나 의도하지 않은 책과의 만남은 반가움의 진동을 더욱 증폭시킬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책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대출할 책의 목록을 작성해 눈부신 봄 햇살을 등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목록에는 없지만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을 때, 제한된 대출 권수로 인해 나머지 한 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면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대출할 책들 못지 않게 읽고 싶은 새 책의 등장은 아쉬움의 크기만큼 반가웠다.

어떤 책을 읽을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퇴근 후나 되어야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동반한다. 읽고 싶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 비할 바 없는 기쁨이자 행복이다.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스승이자 친절한 조언자니까.

ⓒ 아트북스
박홍규의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는 새로운 시각에서 빈센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 <내 친구 빈센트>를 읽었을 때도 빈센트가 밀레의 영향을 받은 화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표지만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의 대부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지하듯 밀레는 최초의 농민화가다. 밀레는 저자의 말처럼 "꾸밈없는 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노동하는 농민과 노동자의 존엄성을 찬양하여 인간적이고 대중적인 주제로 승화" 시켰다. 밀레는 빈센트를 제자로 인정한 적이 없지만, 빈센트는 밀레를 평생 동안 존경했다. 그의 예술뿐만 아니라 그의 삶까지 진정한 스승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빈센트가 그림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스승' 밀레는 세상을 떠났다. 밀레도 빈센트가 자신을 스승으로 받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의 입장에서도 빈센트 같은 제자를 두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

더구나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저자의 경우 스승에 대한 생각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사제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자가 자기 스스로 스승을 찾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신뢰로 모방하면서 배우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창조하는 경우. 또 실제로 만나지도 않고, 또는 만나지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스승을 모시는 경우 더 진정한 사제관계가 이루어지리라."

제자가 스승의 학문만을 존경할 수도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제자들의 생각은 스승이 추구하는 어떤 삶의 모습까지 본받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런 스승을 두었다면 이미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까지나 그 스승의 강의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스승이 펴낸 책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쓴 글을 통해 제자는 언제나 스승의 생각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빈센트처럼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익히는 독학이다. 스승이 있다고 해도 그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스승에 중독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중독을 제대로 된 공부라고 보는 봉건적인 모방법만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참된 예술의 창조란 있을 수 없다.

밀레와 빈센트는 참된 예술창조를 위한 이상적인 사제관계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스승은 마음속에 두고 사랑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스승의 본질을 끝없이 묻는 것이되, 절대로 스승의 모방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사랑만큼이나 스승을 뛰어넘어 자신의 예술과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예술은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빈센트는 밀레의 그림을 참으로 많이 따라 그렸다. 그림을 배우던 초창기뿐 아니라 배울 단계는 이미 지난 완숙기에도 여전히 밀레의 그림을 즐겨 모사했다. 빈센트는 그 작업을 일종의 '번역'이라 표현했는데, 저자는 이에 덧붙여 '색채 번역'이나 '형태 번역'이라는 말로 '모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림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림을 그릴 생각도 없었던 빈센트가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림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나비처럼 온몸을 불살라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색상을 뽐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깊이를 숨기지 못한다.

빈센트는 부유한 귀족들의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감자를 먹는 사람들>로 대표될 수 있다. 그런 그림들이 당시 부르주아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의 부르주아는 빈센트의 그림을 사랑하여 비싼 값에 그림을 사들인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빈센트 반 고흐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밀레의 그림을 오늘날 우리가 왜 주목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또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의 깊은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는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빈센트의 생가를 비롯해 빈센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밤의 카페테라스, 오베르의 교회나 보리밭의 실제 모습을 직접 담은 사진도 빈센트를 아끼는 독자에게는 소중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예술가들이 빈센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삶과 예술에 대한 치열한 자세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 분야에 깊어지면 다른 분야에도 깊어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저자는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다방면에 정통한 학자다. 저자의 방대한 저작활동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실패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노라고 읊조리는 저자의 바람처럼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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