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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의 내면 풍경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4월
평점 :
<책 읽는 소리>를 읽고 있자니 문득 학부 시절 고전문학사를 들었던 기억이 몰려왔다. 학점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끝까지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던 과목이기에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졸업이 싫은 이유는 취업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존경하는 교수의 강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졸업을 한 지 몇 해가 흘렀지만 아직도 마음은 캠퍼스 어느 구석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해 있을 그 곳에,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강의를 들으러 가던 이즈음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책 읽는 소리>는 옛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글들을 많이 수록해 놓았다. 이에 정민 교수가 덧붙여 해설을 하는 형식으로 채워져 있는데, 선인들의 아름다운 글을 선별해 묶고 향기로운 문장으로 해설한 저자의 노력이 눈부셨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각에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옛 글 읽는 것을 꺼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인들의 글을 읽고 있으니 우선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거문고 소리와 해금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한 편의 사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로 맑고 향기로운 정신이 시나브로 온몸을 휘감아 나가는 듯하다.
고요하고 싶으나 고요할 수 없게 만들고, 휴식하고 싶으나 휴식할 수 없게 만드는 소음 일색의 도시 속에서 '텅 빈 충만'을 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 저자가 인용한 명나라 진계유의 글이 눈에 띤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 - 명나라 진계유의 <안득장자언> 중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아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청과물 상인의 녹음된 목소리. 쉬지 않고 반복되어 한참이나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화들짝 놀라는 저자의 모습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한가롭게 책 좀 읽을라치면 창문 너머로 멀쩡하던 보도 블럭을 갈아엎고 다시 블록을 정비하는 기계의 굉음 때문에 한동안 괴로웠던 지난 여름이 떠오른다.
<한가하게 거처하는 즐거움은 다른 것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한다. 집안을 물 뿌리며 비질하고, 아침 해가 비쳐들면 향로를 비로소 피운다. 책상을 정돈하고 책을 펼쳐 되풀이해서 읽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옛 사람이 마음을 쏟은 곳을 엿보기라도 하면 이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고 가만히 혼자 알 뿐이다.> - 이만부의 <한가로운 생활의 즐거움>에서
옛 선비의 아침 풍경이 수묵화처럼 그려진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에서 참 행복을 찾는 선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 걸까. 바쁘고 여유없는 생활 속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을 돌아보고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며 참 행복에 이르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과거는 현재와 통하고 미래와 만나게 하며, 역사는 과거를 현재로 이어주는 가교'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옛일을 기억하는 것은 옛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날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우리가 옛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도구적 지식이 판을 치는 사회에는 깊이가 없다. 깊이가 만들어내는 그늘도 없다. 우주를 읽고 사물을 관찰할 줄 알았던 선인들의 인문적 소양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는 저자의 말을 가슴에 오롯이 새겨본다.
봄 향기 가득한 3월, 선인들의 글귀와 만나는 기쁨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마음이 벅차다. 죽비 소리와도 같은 깨달음을 책의 곳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정민의 <책 읽는 소리>는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식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