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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 서가를 돌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다 주었다.
3 때 꿈이 남성합창단 지휘자였다는 저자는 음대에 진학하지 않았는데, '그 가공할 레슨비를 감당할 만큼 넉넉한 살림'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진정한 예술은 '프로정신을 지닌 아마추어'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는 예술관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도 다방면에 능한 게 사실인 것 같다. 한 곳에 깊어지면 다른 모든 것에도 깊어질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저자가 소개하는 좋은 책 몇 가지
성장소설은 '자아확대의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다. 자아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신열처럼 거쳐야 할 성장의 관문이란 것이 이는데, 그것은 흔히 부조리한 세계와의 싸움을 수반하게 된다. 자아의 성숙이란 '순진성'을 넘어 세계의 '복잡성'을 승인하고 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완숙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직업이 문학평론가인 만큼 많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책들과 조우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근래 가장 감동적인 성장소설로는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차오원쉬엔의 <빨간 기와>와 <까만 기와>를 꼽았다. 제 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나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이지만 다시 보고 싶어졌고, 북경대 교수인 차오원쉬엔의 두 책은 문화대혁명기의 이른바 '홍위병' 세대의 성장담을 다룬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낭만적 동경으로 충만한 김영현의 <폭설>과 사랑에 대해 쓰여진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편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꼽았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만나는 일은 기실 행복한 일이다. 아무 노력도 없이 좋은 책과 만나게 되는 일이 꼭 불로소득 같지만, 대신 많은 이들에게 알림으로써 고마움을 대신하면 좋을 것이다.
'주례사 비평' 사라져야
어느 날 문학평론가가 꿈이라는 한 대학생이 나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신은 도대체가 문학적 감식안이라는 게 없는 사람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평론가들이 탁월한 작품이라고 평가한 것들을 읽어보았는데, 자신으로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읽었다는 작품을 나도 읽어보았는데, 사실 나 역시 그와 동일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그런 작품집의 해설이나 책 뒷면의 추천사들을 읽어보면, 마치 덕담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처럼 그 문장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흔한 말로 '주례사 비평'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독자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하다. 문학평론가가 꿈인 사람에게는 더 절박하게 다가왔겠지만 일반 독자로서도 평범한 작품에 대한 극찬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문학에 대한 감식안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만연해있는 '주례사 비평' 때문이란 걸 알고 나면 독자는 더 허탈한 기분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독자들은 추천사나 평론가들의 말에 도움을 얻어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말처럼 '독자에 대한 미학적 사기'에 불과할 뿐인 '주례사 비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피로한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서점의 문학 코너를 순례하는 독자들의 문학사랑이 아름답게 충족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문학평론가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윤리가 아닌가 하고 저자는 덧붙였다.
문학평론가로서의 고충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그 인간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피와 땀이 흐르는 구체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순덩어리다. 그래서 상황에 개입하는 비평은 때때로 모순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회피한다면 글 쓸 이유가 없다. - 본문 중에서
용기와 대담성 없이 기자나 평론가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학상을 비판했다가 사과하지 않으면 법률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증명을 받기도 했고, 어느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가 '이명원의 글'이 잡지에 실리면 편집위원직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의 반대로 청탁이 취소되기도 했단다.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문학평론에 있어서도 분명 힘든 일이 존재할 것이다. 저자는 문학평론가로서의 고충을 털어놓고 있었는데, 이견이 있으면 반론을 펼치면 될텐데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은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산문들의 빛깔과는 많이 달랐다. 동이 틀 무렵이 주는 신선한 기운과 은은한 커피향처럼 시나브로 스며드는 향기가 마음 속까지 파고드는 책이었다.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진실한 마음은 책을 읽는 독자 누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