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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일반판
나카에 이사무 감독, 진혜림 외 출연 / 마블엔터테인먼트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개봉을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영화가 있었다. 이름하여 <냉정과 열정사이>. 이미 소설로 읽어 내용이나 주인공, 결말에 대해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손꼽아 개봉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영화가 개봉했는데 공교롭게도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여유있게 영화관을 찾으리라 마음 먹었는데 시험이 끝나면서 영화도 내렸다.
'사람들이 수작을 몰라봐도 유분수지….' 아니다. 이것 역시 '코드'와 관련지어 볼 때 이런 류의 영화가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요즘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십 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 옛 사랑을 그토록 오랜 세월 잊지 못하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동화같은 설정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다수는 아니었나 보다.
사랑 이야기는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다. 주인공이 다르고 연출이 다를 뿐 줄거리는 비슷하다. 그렇지만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학 시절을 배경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1986년 <겨울 나그네>가 그랬고, 2001년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러했다. 오늘 보게 된 <냉정과 열정사이>도 그러한 맥락과 같다.
그 영화들에는 마음 속 저편에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학교 안에서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이 자주 가던 까페가 나오고, 그들이 데이트 할 때 자주 들었던 음악, 도서관에서 우연히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일, 눈이 부신 햇살 아래서도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앞에서 행복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는 사랑이야기 외에도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이 있다. 고풍스럽고 세련된 도시 피렌체와 밀라노의 모습과 때로는 낮게 때로는 풍성하게 울리던 영화 음악도 영화를 한층 빛내 주고 있다. 잘 알지 못하던 '복원사'라는 직업에 대해 환기할 수 있었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유쾌했다.
아오이가 쥰세이를 발견하는 골목이 바라다 보이는 교회와 쥰세이와 아오이가 함께 사랑을 나누며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었고 쥰세이와 아오이가 첫 키스를 나눌 때 들려오던 첼로의 선율도 귓전을 맴돈다. 그 모든 것이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필연적으로 그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아오이가 일하던 보석가게 주인의 말이 쥰세이와 아오이의 큰 눈망울과 함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있을 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 뿐이란 걸 알게 되었어."
이 대사는 보석상 주인이 젊은 시절 애인이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이 보석 가게고 여기를 떠나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떠날 수 없었는데 두고두고 평생 후회했다고 지난 일을 회상하며 한 말이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이 주는 여운도 길다. 사랑은 너무 깊어도 안 되고 너무 얕아도 안 된다. 이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운명이라면 누군가 그들을 갈라놓는다 할지라도 결국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낮은 소리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