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폴 맥기건 감독, 조쉬 하트넷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제고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다시 만난다고 했던가.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고, 인연이라면 누군가 아무리 방해를 하더라도 결국 다시 만나지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 영화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 포스터와 제목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음이 선명하게 각인된다. 포스터 위쪽엔 두 주인공이, 그 아래엔 창문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동안에 창문 너머의 여자는 슬프게도 짝사랑을 하고 있다. 영화는 '내가 사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이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걸 이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었다.

매튜(조쉬 하트넷)는 리사(다이앤 크루거)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알랭 드 보통은 그런 일을 두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 정말 그럴까?

얼마간 그녀를 쫓아다니다 결국 리사와 매튜는 사랑하게 되고, 더없이 행복한 그들에 비해 가련한 알렉스(로즈 번)는 마음을 졸이게 된다. 사실 매튜를 먼저 사랑한 것은 알렉스였지만 큐피트의 화살은 리사에게 꽂혀 알렉스는 마음앓이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으련만. 사랑에 눈이 멀어 한 일은 모두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알렉스는 둘을 갈라놓기에 이른다.

짝사랑의 장점은 시작도 끝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건데, 알렉스는 사랑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매튜가 싱글이 되면 자신과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점쳤던 것일까?

알렉스의 발칙한 행동으로 매튜와 리사는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여 결국 이별에 이르고, 2년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만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스릴러물을 방불케 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던 우리의 생각과는 좀 다른 빛깔의 영화라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 볼 기회를 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어차피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알렉스에 비중을 두고 싶다. 짝사랑으로 잉태되었으면 생각처럼 쉽지 않을지라도 그들처럼 내게 다가올 운명을 위해 되도록이면 빨리 외로운 사랑을 접는 편이 좋다.

사람들이 사랑에 목을 매는 것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적어도 우리는 고통스런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인데, 알렉스처럼 방향을 잘못 잡으면 결국 더 많이 상처받는 쪽은 자기 자신이다.

언제인가 소설가 김훈이 그의 저서에서 사랑은 전달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다만 경험될 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든 사랑은 경험에 의해 성숙할 수 있나 보다. 사랑의 슬픔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아픔을 맑게 정화시킬 수 있는 힘도 동시에 배양하므로 사랑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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