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옥중서한>은 서준식이 그의 형 서승과 함께 1971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7년 간 감옥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은 분단된 우리나라의 아픈 실상과 인권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에게 독서는 도락이 아니다. 사명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저 이율배반적 욕망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즉, 한편으로는 깊이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심,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널리널리 알아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이율배반 말이다. 요 며칠 동안 다시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하고 번민하다가, 결국 길게 한숨을 쉬면서 다시 결론을 내렸다.

"깊이깊이 파고들어 널리널리 알아야지." 평생의 독서계획은 나에게 '난센스'이다. 나의 독서는 사명의 요구에 따라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가운데, 그의 독서에 대한 생각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독서일 뿐이었을 테지만, 전향 거부의 이유로 그마저도 일정 기간 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한다.

저자는 사촌 동생들에게 착한 마음으로 좋은 책을 많이 읽기를 당부하며,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이나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같은 책을 권한다. 이처럼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기쁨은 크다.

귀동냥만 하고 잊어버려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것은 마치 과외를 하나 시작하게 되면, 원하지 않아도 과외 하는 학생의 어머니가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여 과외를 여러 개 맡게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서울 구치소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혼자서 면회를 다니셨다. 다른 사람은 거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는 메모를 못하는 어머니께 보고 싶은 책을 부탁할 수 없어 짜증을 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다음날 접견실에서 돋보기를 쓰신 다음 수첩을 펴고 어색하게 볼펜을 쥐시면서 어디 한 번 보고 싶은 책을 불러 보라 하셨다. 나는 뭉클해지는 가슴을 누르고 여러 번 천천히 책명을 불렀고, 어머니께서는 생각 생각하며 그것을 적으려 하셨지만 결국 끝까지 못 적으신 채 면회 시간이 끝나 버렸다.

나는 죽고 싶은 마음으로 감방에 돌아와 시멘트벽에다가 여러 번 대가리를 들이 받았다. 얼마나 안타까우셨겠는가! 배우지 못한 것이 얼마나 서러우셨겠는가! - 본문 중에서

어머니에 대한 저자의 극진한 마음이 이 글에도 소상히 나타나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저자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또한 코끝이 시큰해졌다. 감옥에 있는 동안, 어머니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아버지마저도 그렇게 보냈다. 부모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차가운 감옥에서 살다가 1988년 저자는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저자는 2002년 붉은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책의 서두에 기술해두고 있다. 저자처럼 나도 그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세상에 읽혀야 할 많은 책들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인생에서 독서가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기처럼 너무나 편안하게만 여겨지는 가족과 친지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며, 조국과 민족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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