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전순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봄. 한겨레 신문의 지면 광고를 통해서였다. 지금의 사고로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정당한 요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인권유린의 현장. 그곳이 평화시장이었다.
△평화시장에서의 노조 결성을 인정하라. △하루 16시간 일하던 것을 8시간으로 줄여라. △매주 하루를 쉬게 하라.(2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정기적인 급료를 검토하라.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모든 노동자들의 건강을 검진하라. △다락방을 철거하라. △시다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리되, 고용주가 직접 지불하라. △평화시장 건물 전체에 환기구를 충분히 설치하라.
이상은 전태일의 죽음 후 그의 어머니 이소선이 아들의 소원을 반영하여 고용주들에게 요구한 8가지 항목이다. 노동자를 위해 최소한 지켜져야 할 요구들이 관철되지 못하고, 어린 소녀와 젊은 여성들의 비인간적인 삶의 대가는 유감스럽게도 삶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궁핍한 환경과 절망적인 보수뿐이었다.
일상적 혹사에다 열악한 시설, 겨우 연명이나 할 정도의 임금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건강이 좋지 않았고, 감정적·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다. 가난이 서글픈 것은 가난 그 자체 때문이 아닐 것이다.
민중가요 가운데 <사계>라는 곡이 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빠른 템포의 노래지만 그 가사 내용을 보면 정반대다. '역설'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 될 듯하다. 힘겨운 현실을 그렇게나마 위로하고 있는 것일까. <사계>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이 녹아 있어 더욱 슬프게 들리는 것 같다.
많이 배우지 못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 고작 힘든 육체노동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러운 일이다. 그러한 노동자에게 일한 만큼의 적정한 보수가 지급되지도 않고, 근무 환경의 취약성을 간과하는 등 절대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챙겨왔던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개인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서 아무리 힘을 모아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제도가 앞장서서 제대로 된 길을 가야함이 역사 발전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그러나 어이없게도 정부가 노동 조합비를 강제로 징수하고, 노조 간부를 선택적으로 임명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노조 간부들이 국가와 자본가의 이익에 충성하도록 유인했다는 것에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정권의 계산된 정책에 이바지함으로써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귀족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고, 경영자와 긴밀히 협조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해 나갔다.
노동자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는 우리 사회의 아픈 현대사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