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음에 관하여
함정임 지음 / 이마고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거르지 않고 음악을 켜놓곤 한다. 가령 설거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청소를 할 때, 화초에 물을 줄 때 등등…. 나는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하는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이 아닐지라도 라디오 디제이의 음성이라도 들을 수 있어야 외롭지 않은가 보다.

그에 비해 친구 하나는 책을 읽을 땐 오로지 책만 읽고, 음악을 들을 땐 오로지 음악만 듣는다고 했다. 생각하니 책만 읽고, 음악만 들으면 좀 더 그 세계로 심취하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다.

함정임의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는 우연히 내 시야에 들어온 책이었다. 흰색 표지에 연두색의 글씨체가 귀여웠다. 함정임, 그녀를 떠올리면 우선 마음이 아릿해온다. 세상의 슬픔 가운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다음의 인용문은 소제목 가운데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의 일부분이다.

아빠가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후부터 아이는 그리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곁에 없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이끌리고, 보고 싶고, 생각하는 마음, 생각하다 못해 섬기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 그리움의 실체라면 다섯 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너무 일찍 내려진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나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란 존재의 그늘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내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그리움이란 단지 형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나에게 그러했듯이 생을 보다 웅숭깊게 만드는 불행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그녀는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랑에 대해 정의한다.

"사랑은 분명 슬픔을 남기지만, 또한 그 슬픔을 정화시키는 힘도 배양한다. 그래서 사랑은 배반도 상실도 새로 자라난 사랑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 - 본문 중에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 전혜린과 기형도에 관한 이야기, 축구와 사진전에 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남편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을 읽고 난 후,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차가운 인상을 지녔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점에 대해서 그녀는 만나면 만날수록, 시간이 갈수록 정이 깊어지는 관계를 원하고, 언제든 떠올리면 기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소설가이자 어머니, 딸로서의 다양한 위치 변화를 하고, 그 때마다 순간순간 그녀의 가치관을, 인생관을 엿보는 일은 흐뭇하기까지 했다.

누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에 몸을 담그는 거라 했던가. 이 산문집으로 말미암아 소설가 함정임을 더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성찰이 남달랐던 그녀를 독자들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소설가 신경숙도 그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새삼 내가 거들 것도 없이 그녀는 어디서나 눈을 부시게 하는 사람이다. 찬란해서만은 아니다. 자코메티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 같은 신비한 분위기 때문이며 그녀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내력이 고독하게 타자의 내면을 흔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쓴 산문도 그와 같다.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하는 빗소리와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