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결혼이야기 1 또하나의 문화 11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 또하나의문화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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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한다는 것과 같이 산다는 것'이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머문다. 그 사이에 어떤 괴리가 분명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동시에 그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의 경험에 그의 생각과 철학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는데, 나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선배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과연 결혼이라는 제도는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를 품게 되었다. 만일 후자에 가깝다면 사람들은 왜 결혼이 인생의 정답인 것처럼, 으레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책의 내용 가운데 하나를 보면, 영화 <국화꽃 향기>의 처음 부분처럼 낭만적인 사랑이 등장하지만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고 아픈 기억으로 자리하게 되는 사례가 있다. 그에 비해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한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사례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낭만적인 사랑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를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전혀 이해관계 없이 모르고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밀접하게 하나라고 느낄 때, 이러한 일치의 순간은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격앙된 경험의 순간이다. ...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지면 질수록 친밀감과 신비한 면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감 등이 생기면서 최초의 유쾌한 감정의 잔재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기미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강렬한 열중. 즉 '미쳐 버리는' 것을 사랑의 열도의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던가를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즉, 처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세상에 다시 없을 행복과 충만감을 안겨주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파탄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두 인용문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회의하는 쪽과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의 입장에서 각각 토로하고 있다.

"...'결혼 거부주의자'에서 '결혼해도 괜찮다'에서 '결혼이 웬만하다'로 변해온 나의 20~30대 인식 변화과정은 어떻게 보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나를 맞춰가기 위해 억지로 논리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갖게 해준다. 사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나의 일에 투자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후회스러울 때도 많다.

따지고 또 따지고 한 결혼이었지만 예상하지 않았던 복병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 결혼이었다. 결국은 처음 결혼할 때 따졌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따져 나가야한다는 점이 지금의 결혼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이다.

...우리의 결혼은 계속적으로 따지고 부수고 새롭게 세우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끌어 나갈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3년이 지난 후에야 깨닫는다. '그 힘을 구태여 결혼에 쏟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내게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이지만.…"

"...나는 큰 문제만 없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나의 보수적인 사고방식 탓도 있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동양적인 사고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똑똑한 여자들이 하나라도 더 결혼을 해서 남성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 모성의 위대함은 희생정신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인류 모두가 추구해야 할 과제이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결혼을 통해 터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 초기에 나를 희생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지, 남편이나 시집 식구의 강요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당당히 내 것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와 시집 식구의 관계가 오히려 편안한 사이로 바뀐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새로 쓰는 결혼이야기1·2>에서 필진들이 내린 잠정적 결론은 지금의 결혼이라는 것이 '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정의가 없는 것처럼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부부가 평등한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다각적인 관계에 소홀하지 않을 때 불협화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한 사람에게 맹목적인 인내와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전근대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며, 이제 그런 관계 속에서 결혼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결혼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부부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우리에게 어떤 위상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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