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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평점 :
책을 읽다 보면, 잠시라도 손에서 놓기 아까울 만큼 재미있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한비야의 책들이 그렇다. <바람에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재미있게 읽은 나는 이번에는 <중국견문록>을 펼쳐 들었다. 몇 해 전 나온 책이니 귀동냥은 할 만큼 했지만, '중국'이라는 단어가 왠지 구미에 당기지 않아 외면했었다.
그러나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중국 이야기'는 한비야 특유의 입담에 의해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일화를 통해 나는 한국의 현재를 환기할 수 있었다. 밖에 나가서 보면 조국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탈북한 여성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청화대 교환 교수로 온 김일성 대학의 교수인 북한 아저씨 이야기를 통해서 북한 사회의 단면도 보게 되었다. 청화대 엘리트들의 이야기와 자전거 도둑이야기, 택시 기사와의 대화, 419 도서관 관장이 된 이야기 등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비정부기구가 지원하는 사업 현장에 다녀온 저자를 통해 캄보디아와 케냐의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게 되기도 했다. 에이즈 환자,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긴급 구호 활동의 필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며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온 지금,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깍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깍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저 중국어가 배우고 싶어 중국으로 떠난 저자는 세상에 늦깍이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한비야는 세계 여행 덕분에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꾸려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남과 비교해서 늦은 것 같아 조바심 내고 불안해하는 것은 기실 낭비다. '꽃들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낯익은 것과의 이별이 두렵지 않은 것처럼 낯선 것과의 만남 역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일, 이 길도 나는 거친 약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떠난다.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마음이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갖고 있고, 그 꿈을 향해 가다가 지치면 쉬어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있다. 잊지 않고 한 발 한 발 정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은 우리에게 또다른 꿈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