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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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은 좋은 말일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별로 좋은 의미 같지는 않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아이답게 천진하고 앞뒤를 생각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철없는 아이는 자라면서 철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철이 일찍 들었다는 것은 마냥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이 일찍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일찍 철들게 하는 것은 아이를 아이다울 수 있는, 유일하게 빛나는 시간을 뺏어버린 일종의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 '완득이'라는 친시골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이답지 않은 아이의 범주에 속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면 꼭 내 동생 나이다. 해서 굳이 지나가버린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지 않아도 충분히 그 나이 또래 아이의 고민과 번뇌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에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홀로 키웠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다. 뼛속까지 주류가 아닌 수많은 완득이를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린 나이에 남편 얼굴도 안 보고 먼 나라까지 시집왔는데, 남편이 장애인이거나 곧 죽을 것 같은 환자인 경우도 있다고. 말만 부인이지 오지 마을이나 농촌, 섬 같은 곳에서 죽도록 일만 하는 경우도 있단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 낳고 자신에게 관심이 좀 소원해졌을 때 가슴 아픈 탈출을 하기도 한다고. 남편 입장에서는 부인이 도망간 것이겠지만 부인 입장에서는 국제 사기결혼이라나. (46쪽)

 

우리는 신문에서 종종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들을 야만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가 조심하며 살아도 남에게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를 주고 살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나는 아버지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였다. 비장애인 아버지는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아버지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상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숨긴 자식이라며 듣도 보도 못한 근본까지 들먹인다. 근본은 나 자신이 지키는 것이지 누가 지켜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근본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좀 있어 보이게 비웃을 수 있으니까.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만 가지고 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똥주. 이것이 바로 내가 똥주를 죽이고 싶었던 진짜 이유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딱지가 앉지 않는, 늘 현재형이라 아물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196~197쪽)

남들과 좀 다른 외형을 아버지를 둔 아이는 마음고생을 얼마나 하며 살아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 그냥 봐주면 안되는 걸까. 그냥 보듬어주면 될 것을.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일하는 선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도와주세요…'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월급을 못 받아 대신 받으러 가야하고, 아파서 병원에 갈 때도 같이 가야하고, 한국말을 몰라 이런 저런 볼 일을 볼 때도 같이 가야만 하고…. 한국말을 모른다는 이유로 바보취급을 받는 이 땅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이주노동자를 보노라면 화가 치민다'고도 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우리가 되면 안 될까.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려면 감옥에 있는 재소자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면 된다고 했다. 그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이미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책을 읽고 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른 빛깔의 성장소설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심성을 품을 수 있게 하고, 어른들에게도 인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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