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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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게 된 건 <타잔> 때문이었다. 이후 첫 소설집 <루이뷔똥>을 찾아 봤는데, <타잔>보다는 내게 덜 와 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번째 저자를 만났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읽다보면 시나브로 그렇게 느끼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과 가끔 동일시하는 경향을 발견한다. 나 자신이기도 하고, 이전에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이기도 하고. 그럴 때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추억에 잠기게도 되었다. 가령 세탁소집 딸과의 불화라던가, <초콜릿>에 등장하는 영태씨 같은 인물이다.

사람들은 우리보고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얼굴 생김도 어딘지 닮은 듯하다고 했다. 아직 한번도 우리집에 데리고 온 적은 없지만 원래 있던 가구나 마당의 벚나무처럼 어울릴 것 같았다. 그는 술이나 담배를 멀리했고, 옷이나 씨디 같은 걸 사는 걸 죄악시했다. 남자직원들이 입는 회청색 작업복을 늘 그대로 걸치고 다녔고 신발조차 쇠창이 박힌 무거운 작업화를 털레털레 신고 다녔다.

사내 이발소에서 삼천원을 주고 깎은 머리에 늘 만족했고 주식이나 펀드도 신뢰하지 않았다. 부모나 형제에게도 결코 돈을 빌리지 않았고 빌려주지도 않았다. 그의 저축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란주점은 일생에 한번 가봤대고 맛있는 음식은 살만 찌게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따. 모든 사원들이 그룹 계열사에서 나온 아반떼나 쏘나타를 타고 다닐 때 혼자 경쟁사의 십년 된 마티즈를 끌고 다녔지만, 신기하게도 그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마디로 그는 실속있는 사람이었다. - 181쪽

이 글을 읽고 한참이나 웃었다.

머리를 말리고 있는 동생에게 이 부분을 읽어 주고는

"야, 이 사람이 내 이상형이야."


라고 말하고는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안대소를 한다.

어쩌면 내가 그런 부류의 인간인지도 모른다. 나와 똑같은 남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 내 알던 어떤 선배의 얼굴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흥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면 세상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소설이 과거의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쯤 그 사람은 잘 살고 있을까? 소식을 알 길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숨쉬며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때처럼 언젠가 또다시 만나지겠지. 마트에서 세수 안한 얼굴로 느닺없이 만나지는 일은 없었으면.. ㅎㅎ 

김윤영의 소설은 대체로 온돌방의 아랫목처럼 뭉근하게 따뜻하게 읽힌다. 때로는 반창고 속의 상처가 얼마나 아물었는지 보고 싶지만, 애써 외면하듯 소설은 그렇게 읽혔다

저자는 내게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몇 안 되는 소설가의 범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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