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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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게도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어쩌다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입이 댓발은 나왔고 신세한탄을 한 전력도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2교대나 3교대 근무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데, 그들의 노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살아왔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보고 각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몇 해 전 하종강의 저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을 통해 처음으로 노동운동에 대해 눈뜨게 되었는데, 그때의 울림만큼이나 알싸한 무엇이 가슴을 헤치고 지나갔다. 

 "수간호사의 말이 곧 법이고 원장님이 곧 하늘인 병원, 그곳엔 링거병이나 약봉지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가장 빨리 나르고, 단 한 번에 혈관을 찾아내는 기계가 필요했을 뿐, 인격이 있고, 자존심도 있는 인간이 필요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빽’있는 높은 환자에게 트집을 잡혀 시말서를 쓰는 동료들 볼 때나, 간호 과장에게 찍혀 외래에서 병동으로 쫓겨 가 남산만한 배를 뒤뚱거리며 나이트 근무를 들어가는 선배를 볼 때나, 엉덩이에 들러붙는 과장님의 번들거리는 눈빛이 온몸을 발가벗기는 모욕감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되는 일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단한 걸 꿈꾼 적도 없고 호사스러운 걸 욕심내 본 적도 없는데, 우린 서서히 시들어 갔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스스로의 젊음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고 옳은 건 옳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배웠고 그런 건 그냥 조용조용 말해도 다 통하는 상식인 줄만 알았습니다." - (179쪽)

노동은 고귀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이 바로 노동자의 땀방울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게 풍족한 지금을 살며 단 한번이라도 그것들이 밤을 새운 노동의 대가라는 걸 인식했던 적이 있던가. 우리가 걸핏하면 바꾸고 싶어 하는 휴대폰만 해도 그렇다.

휴대폰의 외형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많은 누이들이, 오빠가, 엄마들이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한다. 작업장은 노동자들에게 맞춰지지 않고, 잘된 제품을 위해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더운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한여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피로에 피로가 쌓여도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교대근무를 하는 열악한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몸과 정신이 휴식할 수 있도록 유급 휴일을 보장하고,  “임원이 아닌 직원들은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는 말이 더이상 노동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의 값진 노력들이 그들의 한숨에 수포로 돌아가지 않는, 그들이 노력한 만큼 그들에게 희열을 가져다주는 노동 환경에서 일하게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 

"우리 사회에는 학번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 학번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여 간다고 나는 믿는다. 학교를 떠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아마 학번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학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빛나는 자리에 서 보지 못한 사람들. 한 번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대에서 이루지 못한 학번의 꿈을 자식 대에서라도 이루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무모한 돌진. 그 무모함이 만들어 내는 온갖 왜곡되고 기형적인 현상과 구조들. 그건 우리가 바꿔야 할 모순의 가장 밑바탕이기도 하다." -(225쪽)

그동안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듣는 이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보람을 느끼며 신바람 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한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작업 환경으로 인해 마음과 몸이 병들지 않는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사회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소시민들에게 커다란 공명을 안겨준다. 돌아보면 노동자 아닌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은 진보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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