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에게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의사로 살면서 보통 사람이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백배쯤 마주하며 삶의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저자는 특유의 입담으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었다.

영화든 책이든 참혹하고 잔인하다 싶은 것은 외면해왔다. 그런 걸 보고 나서 마음이 약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책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무작정 슬프기만 할 것 같아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책장을 몇 장 넘겨보고는 그 동안 왜 안 봤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책을 보고 있자니, 소아과 레지던트 3년차인 친구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지 종종 오프라고 쇼핑이나 영화관을 찾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휴가를 내어 신혼여행 코스인 푸켓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친구도 저자처럼 야반도주의 충동을 경험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미소가 번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든 그곳 생활을 견뎌낸 친구가 너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프지만 마주해야 할 이야기들

물론 내용 가운데는 모르고 살면 좋았을 처참한 내용도 분명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처참하다 할지라도 외과의사나 응급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어느 치매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며느리가 장을 보고 돌아온 사이 금쪽 같은 할머니의 손자는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사건은 한동안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이야기를 읽기에 앞서 저자는 심약한 사람은 읽지 말기를 권고하고 있었지만, 나는 호기심에 계속 읽었고 그 장이 끝났을 무렵 계속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심약한 사람은 정말 읽지 않아야 할 이야기일 듯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병으로 잃고 목을 멘 어머니의 이야기, 장기 이식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어야 했던 이야기, 야반도주를 하고 싶을 만큼 고된 병원 생활, 나병환자를 부모로 둔 아들의 한 많은 이야기 등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에서 뿜어져 나온 눈물은 중력 때문에 얼굴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귓바퀴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모로 누워 책을 본 탓이다.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욕심을 덜 부리게 되지 않을까.

결국 그 욕심 때문에 우리는 괴롭다. 더 큰 집에 살고 싶고, 더 큰 차를 타고 싶은 욕심에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명품 가방에 명품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한다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호흡이 긴 행복은 그런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이 바로 '나누지 않고 살았던 삶'이라고 들었다. 왜 불쌍한 이들을 외면하고 살았을까.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내 재산이 거덜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사람들을 미워하고 살았을까. 좀 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수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는 이야기들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가 늘 죽음을 떠올릴 필요는 없지만, 욕심이 나를 억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생명이 있음을 상기한다면 마음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내일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삶, 따지고 보면 그렇게 허무한 것도 없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서로 사랑하며 살지어다

유서를 남기고 떠나간 분들의 간절함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혹은 우리는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이 혹시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돌아보면 온 세상은 사랑인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힘들게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가는 것일까.(102쪽)


책에 소개된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는 가슴 속에 아직 따뜻한 온기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감정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언제나 유쾌한 일만 좇는 우리들이지만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고 나면 늘 불평만 하고 지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다고 툴툴거리던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며,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혀 그간 읽지 않았던 책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할까. 삶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기실 그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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