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S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켄 로치 감독, 킬리언 머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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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20년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잔혹한 살인이 벌어진다. 청년들이 모여 놀이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는데 영국군들이 난데없이 몰려와서 그들을 일렬로 세우고 이름을 이야기하라고 소리친다.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미하엘은 영어로 자신의 이름 말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닭장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이없는 죽음에 관객들도 할 말을 잃었다.

얼마 후 기차역에서 영국군들이 또 소란을 피운다. 기관사는 영국군은 태우지는 말라는 방침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줄 수 없다고 했고 그들은 무조건 기차를 운행하라며 무자비하게 폭행을 저지른다.

데이미언은 의학도로 영국에 건너가 계속 의학 공부를 할 생각이었는데 자꾸만 눈앞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연출되자 조국을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신의 안위를 위하기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개인의 힘은 너무도 작지만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잠시 자신의 꿈은 접어두기로 했다.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그들은 어딜 가나 자유롭지 못했다. 단지 함께 어울려 다닐 정도의 자유도 박탈당해야 했다. 고민 끝에 청년들은 게릴라를 결성한다. 몇 번에 걸쳐 영국군들이 살해되고 무기가 없어지자, 영국군들은 게릴라들 찾기에 혈안이 되어 결국 붙잡히고 만다. 다음날 처형될 운명의 청년들은 아일랜드계 영국 병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극적으로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밀고자를 찾아 나섰다.

지주의 일꾼이었던 크리스는 강압적인 영국군과 지주에 의해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한 동네에 살며 어릴 때부터 봐온 아직 소년인 크리스를 죽이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데이미언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의학도로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이후 계속된 충돌이 있었다. 그러다 영국군은 북아일랜드의 통치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철수하기로 한다. 문제가 종결되는가 싶더니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에 찬성하는 동족 사이에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꼭 우리나라를 보는 것만 같다. 강대국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며, 그런 이유로 오랜 세월 동안 강대국의 간섭을 받아야 했던 민족적 설움을 생각하면 '대니 보이'라는 아일랜드 민요가 그토록 슬프게 다가왔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형 테디는 찬성하는 쪽에서 동생 데이미언은 반대하는 편에 서게 되었고 그들 사이의 이념은 점점 멀어져가기만 했다. 결국 데이미언은 검거되었고 형의 거듭된 설득에도 데이미언은 무기가 있는 곳을 발설하지 않는다.

결국 테디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눈앞에서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는 흐느껴 운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야만의 시대에 영국은 아일랜드를, 일본은 한국을, 유럽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 만약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범하지 않았더라면 세계역사는 어떻게 쓰였을까.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를 두고 그렇게 가정을 새로이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지나간 역사일지라도 오늘의 일처럼 곱씹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국제 사회의 힘의 논리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이념이란 게 무엇일까. 그 어떤 이념도 생명보다 소중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야만이다. 200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지금도 제국주의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은지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은 주연 배우들도 아일랜드계를 택했다. 특히 동생 데이미언 역을 맡았던 실리언 머피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깃들이는 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은 일제히 밀려드는 감동으로 마음이 먹먹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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