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화려한 무용수의 생활을 담은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생활이 아니라 그것을 닮고 싶은 밑바닥 인생들의 처참한 생활이 역설처럼 흐르고 있었다. 마치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빈민가 어느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 장면이 묘사되고 있었다.

앙헬은 말을 훔친 대가로 감옥에 들어간다. 감옥이란 곳은 어찌 보면 지옥과도 다름없는 세계다. 독방이라면 외롭기 때문에 지옥일 테고, 여러 명이 함께 기거하는 곳이라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가 있기에 그와 함께 하는 고통으로 지옥이다. 감옥에서 교화되어 출감하기보다는 더 악랄한 범죄자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테다.

앙헬은 이곳 감옥에서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수모를 당해야했다. 죄수들이 그를 이성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간수 한명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앙헬은 출옥하면 입버릇처럼 간수를 죽일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을 죄어올 줄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간수 산토로는 희대의 살인마 리고베르토 마린을 감옥에서 빼내 한 달 간 시간을 줄테니 앙헬을 없애라고 지시를 내리고 결국 소설이 끝나갈 무렵 앙헬은 그에게 살해된다.

앙헬은 출옥 후 빈민가에서 우연히 빅토리아을 만나게 된다. 빅토리아는 발레리나를 지망하는 학생으로 그만 첫눈에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모든 것이 침울하기만 한 상황에서도 사랑은 싹튼다. 이 소설에 그다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사랑은 소설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되어준다.

빅토리아는 벌써 몇 달째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해서 학원 수업을 들을 수가 없다. 가난 때문에 점점 꿈과 멀어져 가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빅토리아의 아버지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 가족에게 남은 건 가난뿐이었다. 앙헬은 빅토리아가 다시 학교와 학원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떻게든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최저 생계마저 위협받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삼류극장에서 빅토리아는 아저씨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원비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앙헬에게 그 현장을 들키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될 모습을 보인 자책감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베르가라는 일생을 범죄자로 살았다. 그의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도였다. 나이 예순, 이제 출옥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감옥에서 나왔으나 그를 반겨주는 아내나 아들은 온데간데 없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문제였다. 베르가라는 친구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 친구에게 맡겨둔 돈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빅토리아는 멋진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투사로 명예를 얻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독재정권이 물러가도 사회는 안정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불우한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어쩐 일인지 낙관적이기만 하다.

하루 빨리 사회가 안정을 찾고 밑바닥 인생들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박한 꿈을 꾸며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감내하며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길이 없을 테니.

소설 <빅토리아의 발레>는 밑바닥 인생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아마도 그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시키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독자 개개인에게 돌아갈 몫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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