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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이후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소리 없이 내려앉는 어둠처럼 그렇게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되도록 아픈 삶과는 조우하고 싶지 않은데 어쩐지 소설은 자꾸만 마음을 낮은 쪽으로 침전시키기만 할 뿐 다른 곳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순례>의 윤영은 끊임없이 친구 수민과 자신을 비교한다. 모든 면에서 수민보다 뛰어났던 윤영은 어느 순간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불치병에 걸린 친구의 병문안 다녀오면서도 자신에게 결여된 무언가에 대해 회의하며 주인공은 과거순례를 시작한다. 그것은 생존하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이었으리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들, 하루만 지나면 먼지 앉을 마루를 그다지도 열심히 닦고, 하루만 입어도 더러워질 옷들을 그렇게도 정성껏 빨았다. 뱅글뱅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고 굳게 믿은 채. 나는 반들반들한 마루와 눈처럼 흰 내복들과 얌전한 모범생처럼 차곡차곡 잘도 챙겨져 있는 부엌 외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것들은 내가 죽으면 단 하루 만에 더러워지고 때 타고 흐트러질 것이다. 그러면 나 아닌 또 다른 익명의 여자가 그 일들을 해낼 것이다. … 나는 그렇게 뱅글뱅글 맴돌다 그 누구와도 교환될 수 있는 이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202~203쪽)
일하는 엄마가 싫었던 까닭에 윤영은 소박하게도 현모양처가 되기를 소망한다.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되어 소설도 쓰며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수민과는 달리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윤영은 살림에 몰두했다. 신기하게도 그처럼 다르게 살면서도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누런 원고지, 여기에 담아낼 수 있는 무수한 인생의 파상, 자신이 직접 살지 않고도 그려낼 수 있는 그 무한한 삶의 가능성 때문에 갈래머리 여고 시절 내내 윤영은 이 누런 원고지를 끼고 살았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갇혀 있고 고여 있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이 누런 원고지만 있으면 순식간에 그 삶은 광활한 벌판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바람이 되곤 하였다. 이 누런 원고지가 그녀의 삶에서 사라지는 때부터 윤영의 삶은, 오직 자신이 처해 있는 그 좁은 삶 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그 수많은 빈칸들이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197쪽)
학창시절 수민보다 글을 잘 썼던 윤영은 작가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그런 스산한 마음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한 남편과 착한 딸이 곁에 있는 것에 만족하며 다시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런 위안은 다만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과거순례가 끝나갈 즈음 남편의 고백으로 윤영은 그간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한낮 허구인 것처럼, 사기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수민의 아들 지환이 바로 남편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윤영이 딸을 낳았을 때 즈음 취재차 찾아온 수민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둘의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남편과 수민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윤영을 기만했던 것이다.
남편은 그 대가를 수민이 혼자 받는 것 같아 괴롭다는 이야기를 했고, 앞으로 수민이 살 수 있는 3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이혼하자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생인 지환이도 자신이 돌봐줘야 할 것 같다고. 며칠 출장을 다녀올 테니 그간 마음 정리를 하라는 말만을 남긴 채 남편은 집을 떠났다. 그렇게 소설은 막을 내렸다.
가혹하다. 현모양처의 대가가 바로 남편과 친구의 배신 따위라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윤영은 왜 바보 같이 눈치 채지도 못했을까.
그러나 인생은 또 알 수 없는 법. 오히려 그렇게 된 편이 잘된 건지도 모른다. 윤영에게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제2의 인생이 싹트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문학에 대한 열정들이 현모양처의 자리를 대신하여 활화산처럼 불타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이후경의 소설에는 도처에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폭설>에는 사랑했던 한 때를 회상하며 죽은 애인을 떠올리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역시 여관을 배경으로 한 <낙원장>에서는 중년의 연인이 등장한다. 각자 고단한 삶을 떠올리며 모진 삶의 굴곡을 지나와 이제 떠나면 그뿐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연인들, 그들에게도 일견 사랑이라고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독>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너무나 어이없게도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죽은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니 조금은 소름이 돋는다. <바람의 무덤>에서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이를 잃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다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아이를 묻었는데, 금반지 같은 유채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더없이 슬프게 들렸다.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에서 은해는 자살한 어머니의 모습이 결코 잊혀지지 않아 삶이 온통 뒤틀려버렸다. 주인공 역시 낙태를 감행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낮달>에서는 노동운동으로 남편을 잃고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미숙이 등장한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는 오매불망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그냥 남편이 살아있기라도 하는 것 마냥 대꾸를 해준다. 그런 엄마를 두고 꼬마 녀석이 “어무이, 니까정 돌았나?”하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소설 어디에도 녹록한 삶은 없다. 그렇게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놓지 않는다. 그저 주어지는 삶은 없다는 명제만 남겨놓은 채 소설들은 막을 내리고,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며 소설처럼 녹록치 않은 삶일지라도 우리는 훌륭히 살아내야 할 것이라는 당위만이 허공 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