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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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새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는 독특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혼자서 사랑해도 좋다고 여기는 결혼한 남자가 등장한다. 언젠가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하고 오매불망 바라는 모습이라니, 어찌 보면 세 번 결혼의 경력을 가진 남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낭만적인 연애와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주인공 이름이 비슷하다. 이현은 경제 관료로 결혼 생활에 쉽게 권태를 느끼면서도 매번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인물로 마흔둘이다. 이진은 막 빙하에서 건져 올린 다갈색 구슬 같은 눈동자를 지닌 매혹적인 여자로 신기하게도 영혼을 기록한다.

영혼을 기록하다니 그럼 무당이나 점쟁이 같은 건가. 물론 아니다. 이진이 보는 영혼은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살아있는 영혼인, 생령이라고 했다. 가끔 죽은 영혼도 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무당과는 다르다.

이현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어느 결혼식에 갔다가 신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여섯 살짜리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소설이기에 가능한 건가. 이현은 오랫동안 신부를 마음에 담아두었고 마침내 그 순간의 설렘을 이진을 만나고서 다시 느끼게 된다. 신부와 꼭 닮은 이진은 바로 그녀의 딸이었다. 이진이 태어나기 하루 전에 이진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드디어 모험은 시작되었다. 이세공은 빙하에서 솟아오른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고 딸인 이진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 그는 실패자였다. 이제 두 번째 도전자로 출발점에 선 이현은 이세 공과는 다른 길을 걸을 생각이었다. 이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행복을 넘어서는 무한대의 행복을 두 손에 쥐여 주고 싶었다. 약정한 3년의 기간을 넘어 영원에 이르도록 잠재의식 속에 숨겨졌던 오래된 소망에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진의 맑은 두 눈에 기쁨과 사랑이 일렁이는 그 순간, 그의 사랑은 아름다운 완결을 맞이할 것이었다." (45쪽)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는 이진에게는 직장생활이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처럼 모든 일에 서툴렀다. 영혼을 기록하는 일 외에 이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진의 외모에 이끌린 남자들은 특이한 능력을 가진 이진의 속내를 듣고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다행히도 이현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현은 이진에게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했고 마침내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다.

이진의 관심사는 오직 영혼을 기록하는 일 뿐이었다. 남편의 출근을 돕고, 가사일을 하는 일은 부수적인 일이었고 오로지 영혼을 기록하는 작업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현은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이진을 사랑하기에 그저 함께 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아름다운 이진이 이현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 이진이 이현에게 집착하고 그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길까봐 불안해하는 것. 어느새 찾아든 사랑을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날 미지의 여인이 걸어온 한 통의 전화로 깨닫게 되는 것. 이진이 질투하고 울고 화내며 그의 해명과 맹세를 요구하는 것. 그의 결혼생활에 대해, 아내에 대해 미궁을 헤매는 것 같은 회의가 느껴질 때마다 그는 가슴 안쪽에서 그 작은 상상 속의 장난감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149쪽)

끝내 이현은 이진의 사랑을 얻을 수 없었다. 마음이 없는 여자처럼 느낄 때마다 힘들었던 이현은 마침내 영혼의 기록이 적힌 공책을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고, 3년이 가까워온 시점에서 이진은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계기로 빠르게 진행된 이진의 죽음은 다소 독자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기이한 것은 이진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뱃속의 아이를 남겨두고 이진이 죽었다는 점인데, 이 지루한 반복은 계시처럼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영혼을 기록한다는 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그것 자체로 훌륭한 소설이 된다. 이진의 기록이라는 형식으로 실린 단편들은 저마다 굵직한 주제를 내포하며 <이현의 연애>와는 별개로 독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살갗을 에는 추위도 농도 짙은 소설 한 권으로 녹일 수 있다. <이현의 연애>는 삶과 사랑, 허무와 고독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한 해의 끝에서 좋은 소설을 한 권 더 만났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다.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겨울 선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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