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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타운 - 양쯔 강에서 보낸 2년
피터 헤슬러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미국 사람 피터 헤슬러의 중국체류기입니다. 그가 양쯔 강변에 자리한 푸링이라는 곳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지낸 2년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것입니다. 작가는 지역사회에서 중국 학생들, 주민들과 가까이 지내며 때로는 애정을 때로는 신랄함을 담아 그들과, 그들과 작용하고 있는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자의 시선보다는 깊이가 있어 단순히 이질적인 문화체험에 머물지 않으면서 중국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갖고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는 면모입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기에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평범한 현지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음에서 오는 오만을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냅니다. 이러한 작가의 냉정함은 이 책 전반에서 다른 어떤 특징보다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교직원 가족에 대해서 한 번도 자신을 식사초대하지 않았다고 밉살스럽게 생각하는 부분, 자신의 신체를 건드리는 경우에는 양보 없이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 학교주변 대청소 날에 학생의 봉사활동 권유를 가볍게 물리치며 '이곳에(중국에, 푸링에) 와 있는 것 자체가 봉사'라고 말하는 부분.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위의 이런 대목들은 작가가 자신을 현지에 맞추기 위해 굴절시키지도 않았고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와 있으나 평화와 봉사의 이름 아래 굳이 반성적으로 생활하지도 않았음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책 앞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푸링 생활의 목적을 밝힙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중국어를 익히기 위해'라고. 그는 자신이 밝힌 목적에 부합하는 생활을 꾸려나가며 세밀하게 기록하는 생활을 합니다.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문학수업을 받은 사람이(작가는 프린스턴과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이제 다양한 경험의 일환으로 중국체류를 하고, 체류의 경험으로 글을 쓰고 또 그 경험 자체가 경력이 되어 주는 것. 말하자면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 책이 우리의 손까지 들어 온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자신의 오만, 냉정함, 편협함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정직성이었습니다. 이 정직성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신에 아로새겨진 것이라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고 교수부모(부모가 모두 교수라고 합니다.) 밑에서 자라 최고 교육을 받은 미국 젊은이에게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오만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푸링 생활의 막바지에 푸링 여기저기를 담아 추억의 자료로 삼으려던 비디오 촬영을 하다가 작가의 이런 미국적 오만이 된서리를 맞습니다. 작가와 그의 친구인 아담, 이 두 사람은 비디오에 담을 그럴듯한 장면을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일부러 연출합니다. 한 사람은 길 건너에서 촬영을 하고 한 사람은 찐빵 가게에서 찐빵을 사면서 큰 소리로 농담을 하여 사람들을 웃깁니다. 외국인의 이런 행동에 사람들이 모이고 아담은 심지어 찐빵으로 저글링을 하고 멀리서 촬영하는 작가에게 빵을 던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듭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어떤 중국인이 외국인의 이러한 행동을 제지합니다. 가게 아줌마와 주변 가게의 종업원들과 짐꾼들(그들은 평범한 중국 사람들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기도 하겠지요.)을 찍어대는 외국인이 무례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먹는 음식을 던진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인 것입니다. 웃으며 구경하던 주민들이 사실은 자신들이 구경거리였음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돌변합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작가와 친구를 둘러싸고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8면에 걸쳐 소개된 이 사건을 이 글에 그대로 소개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무척 역동적이고 시사적이고 재미있는 부분이거든요. 특히 참 재미있었던 것은 즐거워하던 군중이 화난 군중으로 변하여 하마터면 몰매를 맞을 뻔한 분위기 속에서 탈출(?)하면서도 자신의 다리를 걷어찬 게 누구인지 봐두려고 달아나며 고개를 돌려보았다는 작가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눅 들지 않는 이 사람의 면면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작가에게 꽤나 큰 흔적을 남긴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중국인의 반응이었지만 사건의 원인제공자로서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겪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작가는 자신이 찍은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면서 자신들의 실수를 찾기 위해, 그런 폭력적인 상황으로 변화한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합니다. 대부분 우월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약간만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해도 자기 속의 오만함을 드러내기 쉽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젊은 지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밖에도 세세한 재미를 더 들자면 예리한 표현력, 풍부한 문학적 소양, 지병(비염이 있어 고생하고 귀가 심하게 아프고 고막이 터지기도 합니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게 지탱해 나가는 생활력 등등이 호들갑스럽지 않은 문장으로 드러나 읽는 사람의 호감을 삽니다. 이방인이 낯선 곳을 경험하고 쓴 체류기 중에서 이렇게 풍부한 독서의 즐거움을 담고 있는 책은 근래에 드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이 푸링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며 정리한 말을 옮겨봅니다.

「나는 중국에서의 평화봉사단 ‘복무’에 대해 이상주의적인 환상을 품지 않았었다. 누구를 구원하러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 도시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업적을 남길 것도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푸링에서 두 해를 보내는 동안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어떤 모임을 조직하거나 이곳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기뻤다. 나는 선생이었고, 시간이 나면 되도록 많은 곳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 했다. 그게 내 일의 전부였고, 그런 역할이 편안했으며, 그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강의실에서 보낸 그 시간들 중에서 남는 게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우리가 함께 공부한 그 어떤 것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랐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거나 셰익스피어 소네트 한 구절이라도 좋았다. 그게 뭐든 다만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것을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해두기를, 무엇이든 단순함 속에서 변함없이 진실된 것을 찾기를 바랐다. 그건 문학에 대한 나의 신념이었다. 문학의 진실은 불변하며, 일상의 발버둥에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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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1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눌러요.
바로 이 책을 사서 읽겠다는 의미랍니다.^^

무채색 2006-07-2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책인데, 님의 시각에 맞아맞아를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되네요. 생각해보니 전 너무 저자와 동일시를 하면서 읽었나 봅니다. 물론 같은 동양인으로 중국인을 가깝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리뷰 잘 읽었슴돠. ^^
 



'지루했다'  '실망했다'  '지겨웠다'라는 평이 대부분이고 '좋았다'는 평은 드물었지만 올리버 스톤의 영화니 기본적으로 볼거리가 될거야,라는 게 극장으로 향하며 가졌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보았는데 전체적으로 지루하지도 않았고 특히 두 번의 전투 장면은 과연 감탄할만한 것이었다.  

당신은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한 편의 영화가 온통 마음에 들고 인상적인 장면이 연거푸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비슷한 경우는 종종 있을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예를들면  대부1,2)   인생에서도  빛나는 몇몇 시간들이 긴 지루한 일상을 견디게 하듯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는, 영화 전체를 먹여 살리는  반짝이는 몇 개의 장면, 머리를 멍하게, 손발을 찌릿하게 만드는 몇 개의 장면이 있다면 그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거 같다. 

알렉산더의 경우는 두 번의 전투 장면이 이에 해당되겠다.  특히 가우가멜라전투 장면은 일상과 평범을 뛰어넘는 어떤 강력한 에너지를 화면 가득 뿜어내며 저런 전투를 통과하고 살아남으면 정말 집에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전투 장면을 보러 가시라. 

알렉산더에게, 이 영화에, 엄마품을 벗어나 세계인이 되고자하는 나와 너에게, 이 전투 장면은 무척이나 상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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