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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ㅣ 여름언덕 공동선 총서 1
제임스 C. 스콧 지음, 김훈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제임스 시 스코트... 여름 언덕, 2014...
이 책, 요즘 읽은 여러 책들과 연결되는 느낌.우선 이 책을 읽게 된 건 후지이 다케시의 <무명의 말들> 때문이었다. 후지이가 인용한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로 이야기된 신호등 안 지키고 길 건너기. 저자 스코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자신의 일상적 경험을 풀어내는 글이 이 책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까. 꽤 고명한 정치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저자가 에세이식 글쓰기로 자신이 하고픈 편하게, 결국 사람들 마음에 다가가려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레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미국 사회의 내에서 차별에 대한 저항, 인권을 위한 운동들. 흑인 인권 운동기 마틴 루터 킹 2세의 연설의 특징 속에서, 공황기 대통령 후보 루즈벨트의 연설의 변화를 통해 리더의 카리스마가 어떻게 청중들로부터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형성되는 보여준다. 청중들의 역할의 중요성은 다시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하부정치(시치미 떼기, 시간 안지키기, 사보타주, 훔치기 등)가 갖는 의미와 연결된다.
이제 너무 익숙해서 시큰둥하게 들리는 '악의 평범성' 대신 '선의 평범성'을 이야기할 때면 이동기의 <현대사 몽타쥬>가 떠오른다. 나치를 피해 비시 정부 하의 프랑스 남부로 피신한 유태인을 르샹봉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위그노였기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끄집어 내어 '선의와 연민의 개별성'을 풀어낼 때 역사학의 설명이 갖는 위험성과 그것을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준다.
예일 대학 교수로서 가상으로 지어낸, 전직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예일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과학논문 인용지수가 즉각 반영되는 베레모를 교수에게 씌우는 이야기는 이른바 정량적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짓거리인가를 보여준다. 정량적 평가가 얼마나 사람을 현혹하는 '반 정치기계'인가 따지는 그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객관적인 기초학력 점수를 요구하는 관료주의 발상이 가져올 결과들과 연결된다.미국의 SAT에 대한 저자의 주장. "교육과 관련해서는 SAT는 개의 몸통을 흔드는 꼬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의 혈통과 식욕과 환경뿐 아니라 개를 먹이고 보살펴주는 이들의 삶까지도 바꿔놓았다. 그것은 식민화의 두드러진 예다." 여기서 사토 마나부의 <학교 개혁의 철학>에서 일본의 자발적 식민화에 대한 이야기가 연결된다면 그런가.
이 박식한 인류학자가 다루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그 자체로 지적 욕구를 건드려준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가 포드 회사에서 가져온 전쟁을 위한 통계 그래프를 요구하자 벌어진 우스운 사태. 미군의 적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사상자 숫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적군 병력을 초과해 버렸다는 이야기 같은. 그 보다 더 중요한 '특수성, 흐름, 우연성'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꺼내는 이야기들을 여기서 다 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저명한, 고명한 아저씨에게 느끼는 것은 '근본주의' 주장이나 '환원주의' 해석를 멀리 하는 자세다. 오랜 세월 비난 받던 프티부르주아에 대한 찬사, 토속적 질서와 앎의 한계에도 불국하고 공식적 질서와 앎의 파괴한 그 가치에 대한 천착 등등 아나키즘은 이러해야 한다가 아니라 국가와 관료를 길들이기 위한 작은 저항, 행위들의 가치와 필요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그로부터 이처럼 느끼는 것은 요즘 내 고민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