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에 걸친 반 조각 가을 달

그림자는 평강 강 강물에 비쳐 흐른다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향하며

그대를 생각하면서도 보지 못한 채 유주를 내려간다.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 넷에서 서른 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 날이면 또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오늘, 청춘의 문장들.을 읽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hoice 2004-05-1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주 앉아서 밥을 먹었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머뭇거리다가

돌아왔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
 
숙명가야금연주단 3집 - Let It Be
숙명가야금연주단 연주 / Kakao Entertainment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왜 할 일이 많으면 더 하기 싫어지는걸까. 그 이유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어쨌든 지금, 할 일이 많은데 그냥 음악이나 듣고 있다. 아니, 그냥 음악이나.. 라고 할 음악은 아니지만.

숙명가야금연주단은 3집에서 비틀즈의 몇몇 넘버들과 사계 중 봄(Spring)을 가야금으로 연주했다. (뒤에는 원래 가야금을 위한 곡들도 있다. ) 그리고 슈베르트의 추억. 이라는 제목의 창작곡이 들어있는데, 비오고 바람부는 오늘 날씨랑 잘 어울린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튕기는 줄들, 하프처럼 그냥 하염없이 맑기만 한 것도 아니고 적당한 울림과 적당한 비애가 묻어있는 음색이다. 여럿이 연주해서 하나의 음악을 이뤄낸다는 것도 맘에 든다.

비가 계속 부슬부슬 온다. 에라. 오늘은 쉬어주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oice 2004-05-1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대구역을 지나간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Hey Jude를 듣고 있다
먹먹한 마음에 눈이 자꾸 뜨거워진다
커피를 마시는 척, 바쁘게 무엇인가 적는 척 한다

오늘 나와, 세상에서 아마 가장 가까울
새 아이가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이에게는 보다 즐거운 생이 기다리기를
그 아이가 스무 해 넘게 살았을 때는
보고 싶은 모두를 옆에 두고 살기를
 
수상한 과학
전방욱 지음 / 풀빛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단백질을 정제하는 틈틈이 '수상한 과학'을 읽고 있는데 때 맞추어 황우석 교수팀에 대한 Nature의 기사들이 각 뉴스 사이트에 떠올랐다.

http://www.hani.co.kr/section-004000000/2004/05/004000000200405061439719.html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0/2004/05/005100030200405092103201.html

논란이 된 난자기증자의 문제는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논의에서 제외하더라도, 그 팀은 정말 뉴스메이커임에는 분명하다. 요즘 생명과학분야 기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만큼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주면 조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 기사들을 보고 또 해보았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이 책, 좋은 책이다. 분자생물 분야에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종업계종사자--;와 정책 입안자 혹은 결정자라면 반드시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연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구전반을 아우르는 연구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짚고 있기 때문에 '이책이야말로 권장도서'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은 '과학자 구보씨의 하루'로 시작한다. 실험에 지쳐있는 대학원생 구보씨는 복제배아를 연구한다. 묵묵히 연구하는 자신들의 노고를 치하하진 못할 망정 생명윤리를 들먹이며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회단체가 그는 못마땅하다. 아니 우리가 난치병을 고치겠다는데!

실제로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활동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썼듯이 매일매일 '구체적인 과학적 과제와 씨름하다 보면 연구계획서에 써 있는 연구 목적, 기대 성과와 활용방안'은 잊혀진다. (특히 나는 기대성과와 활용방안을 잘 잊는다.==;) 그러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급급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분야일수록 일파만파가 된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조작식물과 배아복제 문제를 중심으로 학계와 사회에 퍼졌던 여러 스캔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치중립적이라고 믿는 과학의 결과물 조차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특히 산업과 결부되어 돈이 오고가는 문제가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는 것이 여러 예를 통해 여실히 들어난다. 과학적 결과물을 발표할 때 따라야 하는 동료과학자들의 심사과정이 배재된 언론플레이가 과학 그 자체에 어떠한 해를 끼칠 수 있는지는 7장과 8장(豚벼락 돈벼락, 섹시한 과학자)를 읽으면 알게 된다.

문제는 욕망이다. 나는 세계최초.를 노리는 '섹시한 과학자'들의 마음에 있는게 진정 진리를 향한 열망이라 믿지 않는다. 기초과학에 대한 안정적이고 고른 지원대신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될 분야만 키우자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듣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제대로 된 과학자, 정치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도 좋고 경쟁력도 좋다. 그러나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이고 사회다. 과학도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될 때 사회의 호응을 받는다. 이를 위해 저자가 지적한 대로 생명과학도와 생명과학자에 대해서는 윤리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대중에게는 다각화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전해져야 한다. 다양성은 여기서도 중요하다. 

ps. page 221, 아래에서 6번째 줄 Reference가 잘못 달렸습니다. 22) -> 21)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털이 2004-05-1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페이퍼에서 소개하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도 잘 봤습니다. '동종업계종사자'로서 꼭 읽어보도록 하지요 ^^

Choice 2004-05-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심재규 2004-05-1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보고 싶네여....
 

강철씨에게
후텁지근한 베이징의 초여름이었지요. 당신을 만난 지도 어느덧 2년이 가까워집니다. 18살 때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북한을 탈출했다던 당신도 23살의 청년이 됐겠군요. 그토록 소망하던 한국행을 이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당신의 깡마른 몸과 분노에 찬 눈을 보면서 북한 정권을 결코 용서할 수는 없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키가 채 160cm가 안 되는, 20대 청년은 온몸으로 당신이 살아온 체제를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실상을 물을 필요도, 확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당신의 몸이 그 모든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고도 잊고 살았습니다.

얼마 전 봄날의 안온한 저녁에 채널을 돌리다 KBS <수요기획>의 ‘농사짓는 도시, 아바나 이야기’를 보게 됐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를 보면서 내내 북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한 90년대, 당신의 조국과 마찬가지로 쿠바에도 기근이 닥쳤나봅니다. 사탕수수를 팔아서 옥수수를 사던 무역이 끊겼겠지요. 도시인 아바나에 기근이 특히 심했다고 합니다. 한때 아바나에만 영양실조로 인한 실명자가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그래도 쿠바 사회주의는 인민의 굶주림을 수수방관하지는 않았나봅니다. 시당국이 앞장서서 아스팔트 바닥에 텃밭을 일구고, 무너진 공장에서 닭들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민에게 곡식을 줄 수 없으니 씨앗을 나눠주고, 고기를 배급할 수 없으니 어린 가축을 공급했습니다. 인민들은 그 씨앗과 가축을 키워서 허기를 채웠습니다. 자연스레 아바나 곳곳에 도시 농가가 생겼고, 인민들은 굶어 죽지 않아도 됐습니다. 인민의 자발성은 전대미문의 도시 생태농업의 성공까지 일구어냈다고 합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맞습니다.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궁여지책이었지요. 궁여지책치고는 참 아름다운 성공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성공 앞에서 엉뚱하게도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북녘의 지도자들은 왜 저런 궁여지책을 강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 때문이었습니다. 유기농산물을 먹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쿠바의 아이들을 보면서, 쌀 한줌이 없어 굶어 죽었다던 당신의 동생이 떠올라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무려 300만명이라고 합니다. 90년대 후반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그런데도 북녘의 정권은 핵무기 만드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만약 쿠바의 도시 농부 헤수스가 북한에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신이 예상하듯, 허가받지 않은 뙈기밭을 일구었다고 인민재판에 회부됐을 겁니다. 그런데도 북에서는 아직도 흉흉한 이야기만 들려옵니다. 밀실농업인 주체농법의 수확량이 낮은데도, 장군님이 돌아가셔서 주체농법을 바꿀 수 없다는 ‘교조’가 판친다는 소문 말입니다. 오랫동안 탈북자들을 도와온 스님은 굶주리면 훔쳐 먹을 자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북에는 그런 자유조차 없다고 한탄하십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물론 핑계는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의 경제봉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미제의 경제봉쇄가 쿠바라고 피해갔겠습니까? 모범은 전파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북녘의 사회주의 정권은 사회주의 형제국의 모범은 왜 배우지 못했을까요. 그것도 미제의 탓입니까?

그 다음주 수요일 밤에도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바그다드 함락 1년, 이라크는 지금’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북녘의 어제를 보았다면,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는 북녘의 내일을 보는 것 같아 섬뜩했습니다. 미군에 의한 ‘해방’ 1주년을 맞은 이라크의 곳곳에는 평화 대신 폭력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케르발라의 시아파도, 바그다드의 수니파도, 키르쿠크의 쿠르드족도, 이라크인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차도르를 두른 여인은 남편의 죽음에 오열하고 있었고, 실업자가 된 청년은 당구로 소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해방’ 이라크의 오늘이었습니다. 강철씨가 동경하는 미국이 가져온 평화의 실체였습니다.

그 즈음, 미국의 상하원에는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됐습니다. 그 법안은 ‘자유’ 대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을 노리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도 ‘인권’이었습니다. 미국은 90년대 ‘이라크 해방법안’을 만들어 침공의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왔지요. 이런 현실이다보니, 이라크의 현실이 자꾸 북녘의 미래와 겹쳐졌습니다. 오랜 굶주림 뒤에 찾아오는 자유가, 테러당할 자유라니,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저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미제의 침략에 저항하지도, 북한 정권의 폭정에 항의하지도 못한 채 그저 속수무책입니다. 어디에도 동지는 없습니다. 세상은 미제에 모든 탓을 돌리는 사람들과 미국이 해방군이라고 믿는 사람들로 두 동강나 있습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미국에 반대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북한 정권에 항의하는 동지들은 찾기 힘듭니다. 그래도 살아서 함께 한반도의 봄을 맞자고 허튼 약속밖에는 못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당선사례. <씨네21> 독자들의 성원 덕분에 우리 노회찬 오빠가 JP 선생님을 물리치고, 금배지를 달게 됐습니다. 저도 비로소 선거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게 됐습니다. ‘노빠’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from http://www.cine21.co.kr/kisa/sec-002200210/2004/05/040507172009102.html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hoice 2004-05-08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뉴스가 있다.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에 관한 뉴스들. 인권을 들먹거리면서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려는 미디어의 태도가 미덥지 않은데다가 그런 종류의 뉴스에 타격받을 내 정신세계의 안정을 위해서 제목조차도 보지않고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인간을 스스로의 의지 이외에 다른 것으로 행동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 경멸을. 이라크 인민의 인권을 찾아주겠답시고 나서서는 똘아이짓을 하고 있는 미국/미군에게 무한한 경멸을.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1.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는 운명의 사나이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사나이의 사랑은 운명을 시험하듯이 다가와서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연애소설, p.44)라며 손을 잡는다.

사나이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2. 28년전에 헤어진 아내가 죽었다. 유품을 가지러 가는 길에 노변호사는 동맥류에 걸린 '나'와 동행한다. 남쪽으로 가는 길모퉁이마다 잊혀진 기억들이 이정표처럼 나타난다.

"무슨 책에 이런 말이 씌어 있던데, 가을은 '후회와 기억의 계절' 이라고 말이야."

"어떤 뜻일까요?"

"겨울, 봄, 여름을 지내면서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고, 그것을 기억한다. 그럼 다음 실수를 예방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때까지의 실수도 어떤 형태로든 메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다가올 추운 겨울을 맞는다, 뭐 이런 뜻일까?"

나는 잠자코 도리고에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난 이미 늦었지만."

도리고에 씨는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절대 그 사람의 손을 놓아서는 안되네. 놓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멀어지니까. 그것이 내 인생 28년분의 후회일세." (꽃, p.175)

3. 만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죽어도 손을 놓지 않으면 헤어지지 않는다. 손을 놓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만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 없다... 말들이 머리 속에서 돌고 돈다. 다시 누군가와 손 잡는다면 그 순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렇게 가만히, 숨죽이고 있겠다. 가네시로 카즈키, 난데없이 시작되는 사랑을 믿는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