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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의 힘!

디지털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글쓰기…대중적인 설득력 지녀야 성공한다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서울대 공대생들의 글쓰기 강의 모습. 빔 프로젝터를 통해 철저한 첨삭지도가 이뤄진다.

“지극히 평이하고 재미없는 글이군요.”
강의를 맡은 김영재 박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빔 프로젝터로 벽에 쏜 글에는 밑줄과 함께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바뀐 부분이 유난히 많았다. 색깔이 화려한 것은 첨삭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과학에 관한 관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쓴 학생은 나름의 분석을 덧붙였다. “제 글의 문제점은 몇개 문장 단위로 조각이 나서 전체적인 글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점인 것 같습니다.”

5월3일 오후 1시 서울대 61동 교수학습개발센터 지하 1층. 이 대학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과 글쓰기’ 강의의 풍경이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글이지만, 우리말은 술어 중심의 글이죠.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우리글의 매끄러운 맛을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글의 전체적인 구도도 보면서 문장 하나하나도 지적해주는 방식이다.

대학국어 작문 위주로 바뀌고 있다

강의 이후 취재팀을 따로 만난 김 박사는 “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 절반 이상이 글쓰기 능력이 자신의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서 “그나마 학생 수가 적고 첨삭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하나 건넸다. 책 제목이 〈scientists must write〉였다. 외국 대학들에서 쓰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교과서였다. 서울대에는 아직 글쓰기 교과서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이다. 학교 당국은 신입생들이 교양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국어’ 과목을 기존의 읽기 위주에서 글쓰기 위주로 바꿨다. 실제로 글을 써보고 첨삭을 하는 방식이다. 대학 국어교육이 근본적인 대전환의 길로 접어든 것은 30년 만의 일이다.

‘글쓰기 교육의 강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강현배 부원장(수리과학부 교수)은 이런 변화에 대해 “박사나 석사 논문에도 비문을 쓸 정도로 글쓰기가 엉망이라면 학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며 “현재 약대가 필수로 바꾸고 있고 공대도 2007년부터 글쓰기 강의를 필수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와 글쓰기가 분리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 최근 대학들에서는 '글쓰기교실' 이나 '글쓰기 강좌' 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글쓰기교실.

글쓰기 열풍은 다른 대학들에도 상륙한 지 오래다. 가톨릭대는 교양교육원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창우 교학부장(철학과 교수)은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 역량인 문제분석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할 언어능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며 “글쓰기는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기초능력을 키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맞춤법같이 기술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가장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대 이외에도 성균관대, 연세대, 숙명여대, 서원대, 서울시립대, 한림대 등이 글쓰기 교육 강화를 실천하고 있는 대학들이다. 영남대는 과학기술부 원자력 국장으로 재직하다 ‘대국민 공고문안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글쓰기 전문강사로 변신한 임재춘씨를 공대 객원교수로 초빙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임 교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라고 외치고 다니는 ‘글쓰기 전도사’가 됐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책까지 펴낸 그는 “이공계 출신들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하려면 글쓰기지수(WQ)가 높아야?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글쓰기가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노동인 글쓰기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화려한 빛을 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적 성공의 기준 또는 잣대의 하나로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가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체계적 글쓰기는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입시와 입사 과정에서 글쓰기를 요구하는 수준과 비율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언론사들에서는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토익시험처럼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과장 승진시험에서 논술시험을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 신기정 과장은 “종합사고능력을 평가하는 데 논술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면서 “시험 때마다 각 대학의 교수들한테서 복수의 시험문제를 받아 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 대학들이 논술을 본고사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한 직후부터는 또 다른 방향의 글쓰기 열풍이 불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 글쓰기의 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이라는 책을 준비해온 한미화씨는 “최근 출판계의 도드라진 흐름은 글을 맡길 수 있는 필자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생겨나 그 저변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점”이라며 “글쓰기의 전 분야에서 주체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쓰기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권력자들인 교수, 시인, 소설가 등이 힘을 잃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 글솜씨가 있는 이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라고 전제한 뒤 “인터넷이 일반화한 이후 역설적으로 글쓰기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메일에, 홈페이지에, 블로그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또는 쓰고 싶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글쓰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꼭 필요한 문화 유전자이자 문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글쓰기를 잘해야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대중과도 소통하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발언하는 것은 이제 전문가들에게 필수능력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더라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그의 글쓰기가 지닌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는 평범한 저술가로 머물렀을 것이고, 문화재 행정의 최고 사령탑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각각 30만부와 7만부라는 판매량을 기록한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이 성공한 뒤 두 책의 저자인 정재승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젊은 과학자에서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됐다. 글쓰기가 직업적 성공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질주


△ 글쓰기가 대학 국어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와 서울대의 대학국어 교재.

글쓰기와 애초부터 먼 것처럼 여겨지는 분야에서 글 잘 쓰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더욱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화가 김병종·한젬마·김점선씨 등과 이주헌·노성두·박영택씨 등은 미술 분야에서 꼽히는 글쓰기 전문가들이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책이 이름나 텔레비전에까지 진출한 경우다. 영화와 법 이야기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냈던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 문학을 하는 사람의 감성을 유지해 언론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 시사적 감수성과 대중적인 문체로 각광받는 차병직 변호사는 법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역사 분야의 치밀한 고증과 해석을 재담꾼의 수준으로 풀어내는 한홍구식 역사 글쓰기법 역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곳에 언급된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영역을 보여주되 그 고갱이에서부터 주변부까지 두루 보여주는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설득력과 소통력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지 않고, 그것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녹록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승헌 변호사는 “전문가들은 일부러 글쓰기에서 ‘구획 짓기’를 하기도 하는데 판사들의 글쓰기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문가의 글쓰기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통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봄이 와도 새는 울지 않는다”는 시적 표현으로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이 인류 최고의 생태학자는 아니지만, 그는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대한 생태학자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남쪽 비전향 장기수들의 감옥 안 역사는 우연히 동료 양심수가 된 소설가 김하기가 <완전한 만남>가 쓰지 않았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기록될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정리하고 생각을 기르는 데 글쓰기 지수를 높이는 것은 생활인의 필수덕목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글쓰기 시대다.


글 못 쓰는 이공계, 보따리 싸라

설득력 있는 글로 성공한 최재천 교수… “과학 분야일수록 쉽게 풀어 쓰는 고도의 능력 필요”


△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 대중과 소통하기 → 사회적 발언력 확보하기’에 잇달아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5월4일 연구실에서 취재팀을 만난 최 교수는 “디지털이 아무리 새로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내용을 아날로그로 구상하고 채워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게 글쓰기로 통한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폈다.

그는 지난해 여성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동물들의 세계와 비교해가며 호주제의 비과학적 측면을 비판한 점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져 결국 호주제 폐지에 도움을 줬다는 게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요즘도 양성평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회적 발언력이 커졌다.

그는 “문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은희경, 김형경, 공지영 등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소설가들이 신간을 써낼 때마다 빠짐없이 책을 보내올 정도”라고 했다. 최 교수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인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2001)가 나온 뒤로는 ‘문학적 형상화 능력까지 갖춘 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과학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인문학적 토대와 함께 정확성·구체성을 추구하는 문장 스타일은 그의 글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글쓰기 능력을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글쓰기가 더 필요한 분야인데도 아직 사회적 편견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외국에는 자연과학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게 공식인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글 좀 쓴다고 하면 문과 가라고 하고, 못 쓴다고 하면 이공계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학 분야에 더 높은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쉽고 설득력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세계적인 과학 논문도 설득력 있게 쉽게 잘 써야 잘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드는 사례는 DNA 이중나선 이론을 만드는 데 함께했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경우다. “사실 크릭이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뛰어났지만,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해요. 그 사람이 쓴 <이중나선>이라는 책 때문이죠. 대중적이고 솔직담백하고 멋지고 후련한 책입니다. 과학자가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죠. 그것 때문에 왓슨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기록됩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죠.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은 또 어떻습니까.” 적어도 보여줄 게 있는 과학자 가운데 글을 잘 쓴 과학자들이 가장 유명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생들 중에도 “‘나는 글을 못 쓰니까 이공계 왔다’는 얘기를 하면 나는 당장 ‘보따리 싸라’고 호통친다”고 그는 전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그의 서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책이 많았다. 족히 수천권은 돼 보였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나 볼 법한, 바닥에 바퀴를 단 이중책장도 있었다. <법과 문학 사이> <담배와 문명> <다시 찾은 우리 역사>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등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기장을 탐하지 마라

글쓰기의 적들은 누구인가… 한줄짜리 댓글, 일률적인 논술시험, 일기장 검사


글쓰기 지수를 계량화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의 평균 점수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글을 쓰기보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열광하고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다는 한줄짜리 댓글에 더 열심인 젊은 세대를 봐도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은 ‘획일적인 글쓰기를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실시되는 논술시험이 대표적인 경우다. 논술 수준은 본질적으로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와 생각을 얼마나 깊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의 논술은 천편일률적으로 테크닉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현배 부원장은 논술시험을 채점한 경험을 털어놨다. “수백명의 글을 읽는데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의 글을 쓰는지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리고 그런 글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쓰기는 개성적인 생각을 자기 식대로 펼치는 데서 출발하는데, 적어도 현재의 논술 대비 공부는 그것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타계한 국어학자 고 이오덕 선생은 이 때문에 “글짓기를 할 생각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권위 권고 조처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일기장 검사’도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일기는 대표적인 자기성찰적 글인데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첫 경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중한 경험을 망쳐놓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일정한 분량을 몇번 반복해서 베껴쓰는 글쓰기 숙제도 생산적인 글쓰기를 망친다. 개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개입할 여지를 처음부터 막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글쓰기를 체질화하자는 취지의 교육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지난 5월6일 서울 청파동 한 주택가에서 취재팀이 확인한 가정방문형 글쓰기 수업의 경우 ‘생활 속 경험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이력서 쓰기를 수업 내용으로 삼아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이런 방식의 글쓰기 교육을 해온 ㅅ교육 관계자는 “아이들과 교사들보다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점수로 환산하지 못하는 글쓰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는 이런 시험문제가 나온다. 꿈은 필요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가 진짜 높아지려면 고등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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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년 4월 15일자.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5/04/007000000200504150900211.html

예일·컬럼비아 대학원생 첫 연대파업 시도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해 온 미국 예일대학과 컬럼비아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오는 18일부터 아이비리그 최초의 '연대파업'에 돌입한다.

메리 레이놀즈 '예일대학원 피고용자ㆍ학생 기구' 공동회장은 두 학교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이 14일 밤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파업을 결의해 오는 18일부터 양 학교 캠퍼스에서 파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마이다 로젠스타인 '컬럼비아대학원 피고용자 연합 회장'은 두 학교 대학원생들이 오는 20일 뉴욕에서 공동 집회도 열며 미국 최대 노조연합체인 노동총연맹-산별회의(AFL-CIO)의 존 스위니 회장도 이날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원생들은 학교측에 보수 인상과 건강보험 혜택 확대 등 복지 증진을 요구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로젠스타인에 따르면 컬럼비아대학의 경우 학부 주요 과목들을 가르치는 수업조교(TA)는 1년에 1만8천달러와 제한적인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레이놀즈와 로젠스타인은 예일대에서는 대학원생 TA 500명 중 300명 가량이, 컬럼비아대에서는 1천여명이 대학원생 노조에 가입했다면서 "학교측이 협상에 임한다면 파업을 피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대학은 모두 성명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학생들과 협상할 뜻도 없다는 뜻을 밝혔다.

수전 브라운 컬럼비아대 대변인은 "학교는 대학원 수업조교나 연구조교들이 학생일 뿐 피고용인이 아니라고 규정한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의 관점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톰 콘로이 예일대 대변인은 14일 대학원생들이 가르치던 과목을 교수들이 대신하거나 여러 수업을 하나로 합치는 등의 방식으로 수업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밝혔다.

그는 수업 중 70%는 교수들이 TA의 지원없이 단독으로 맡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 파업은 '상징적 행위'일 뿐 예일대학 학부생 5천200여명의 수업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파업에 참여하는 대학원생들도 현재 받고 있는 재정보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사 카플란 마이클스 컬럼비아대 대변인도 학부생 5천500여명에게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파업에 따른 수업 일정 변경 등을 학교 웹사이트에 공지할 것이라고밝혔다.

(보스턴 블룸버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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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section-021021000/2005/03/021021000200503230552046.html

과학과 사회의 즐거운 만남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회의가 보여준 과학교육·시민 참여 시스템…전문성의 벽을 깨고 융합으로 나아가라

▣ 워싱턴DC= 조숙경/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과학사 박사

‘과학을 진흥시키자, 사회에 봉사하자’(Advancing Science, Serving Society). 이는 전통을 자랑하며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과학자·과학교사·과학 커뮤니케이터 등 과학 관련 기관 종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유의 장을 마련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협회의 슬로건이다. 미국과학진흥협회는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창간해 기초과학을 선도하고, 미국의 과학연구와 교육, 진흥에 앞장서왔다. 이 협회가 지난 2월 말 워싱턴DC에서 ‘연계: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The Nexus: Where Science Meets Society)을 주제로 마련한 제171차 연례회의에서는 의미 있는 과학계의 화두가 잇따라 제시됐다.

과학교사를 위한 인터넷 교육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촉 지점을 넓히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인터넷을 활용하는 과학교육 시스템인 ‘사이언스 넷 링크’(Science NetLinks)와 최첨단에서 진행되는 과학연구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와 이해를 도모하는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당신은 접속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존재하는 것이다”에 걸맞게 사이언스 넷 링크는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청소년 대상 과학교육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사이버 세상에 떠도는 과학기술 관련 정보를 청소년들이 쉽고 효과적으로 찾아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과학교육자와 과학교사·과학자가 공동 기획·제작한 양질의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 사업은 전국과학교사협의회, 전국수학교사협의회, 국립인문학지원기금회 등 기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마르코 폴로 파트너십’(Marco Polo Partnership)이 주도했다.


△ 미국과학진흥폅회의 연례회의는 과학과 사회의 다양한 소통 방식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각 국의 참관인니 자리를 함께 했다.

사이언스 넷 링크는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과학교육 포털사이트로 대상별·난이도별·수업시간 활용도별로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과학교사와 현장의 실무자가 참여해 워크숍 형식으로 3일 동안 연 회의에서는 온라인 웹을 활용하는 기초 수준의 지식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자들의 연구내용에 접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교육이 이뤄졌다. 이 사업은 200만 과학 사랑 회원을 구축해 활발히 운영되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의 ‘사이언스 올’(scienceall.com) 프로그램과 비교해볼 만한 대목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이언스 넷 링크는 청소년이 아닌 과학교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교사 1명이 평생 2만명의 학생들을 만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학생 개인에 대한 접근보다는 교사를 생각하는 게 유용할 듯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2년 전부터 제기된 PUR(Public Understanding of Research)라는 새로운 과학문화의 패러다임이었다. ‘연구 중인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뜻하는 PUR는 1980년대 광우병 파동과 함께 일기 시작한 영국의 PUS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중시하는 프랑스 중심의 PCST(Public Commun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그리고 일반인의 과학기술 활동에의 참여와 인식을 강조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중심의 PPT(Public Participation of Science), PAW(Public Awareness of Science)를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다. 과학기술의 생산자인 과학기술자와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일반 대중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쌍방향 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PUR는 과학연구의 방향에 의견을 개진해 더욱 풍요로운 과학기술과 인간적인 과학기술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과학연구의 윤리적·사회적·정치적·법적 시사점에 관한 논쟁에서 대중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요즘 과학기술 연구 과정에 시민의 참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일본의 PUR 공동사업을 추진한 미국과학재단의 하이만 필드 박사는 “국가 과학연구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국민은 미래의 수혜자 아니면 피해자일 것이기 때문에 진행 중인 과학연구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했다. 과학 박물관과 각급 학교, 매스미디어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과학자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본과 미국의 경우는 이제 막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에 과학문화홍보비를 제정한 한국적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다수의 국민을 과학연구에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PUR, 과학자와 대중의 쌍방향 교류

그동안 국내의 과학기술계 풍토는 연구를 성과 위주로 진척시킨 뒤, 결과를 산업에 직접 응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생산되는 과학연구를 콘텐츠로 하는 시민 과학교육이나 과학문화, 청소년 과학교육, 호기심 유발 등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물론 과학 선진국의 경우 우리의 현실과 사뭇 다르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등 거대 과학연구소를 비롯해 유럽의 입자물리연구소(CERN), 일본의 지하 관측설비 ‘슈퍼 가미오칸데’(Super-Kamiokande) 고에너지가속연구소(KEK) 등은 과학교육 전문가들을 채용해 과학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과학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에 연구 내용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학과 사회의 즐거운 만남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새롭게 책정된 과학문화홍보비는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PUR를 시행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회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생색내기’나 ‘부풀리기’ 같은 오래된 관행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계는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를 리드하는 이념과 양식,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한 기조 강연에서 세계적인 입자물리학자인 메릴랜드대학교의 제임스 게이츠 교수는 “아인슈타인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은 창조적인 인류, 인류 개개인의 창조성”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적합한 PUR를 통해 이뤄나가야 한다.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결같이 혁신(innovation)과 지속 가능성(sustainablity), 융합(fusion)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면서 국가 정책에도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인이 지구라는 푸른 별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이 되도록 하며, 우주라는 신세계가 세계인을 위한 혁신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융합은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이념간 융합, 동서양 융합, 사회계층간 융합,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 과학 분야들간의 융합은 이제 생존을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패러다임이다. 이번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회의는 융합의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 전부터 융합이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과학 분야들간은 물론, 분야 내에서도 전문주의가 너무나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전체 사회의 창조적 역량 강화를 위해 과학 분야간의 융합, 더 나아가 과학과 타 분야간의 융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융합’은 아직도 하나의 ‘수사’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다. 적어도 1년에 한번만이라도 융합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사이언스 넷 링크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결합되고, PUR를 위한 즐거운 전략이 모색된다면 융합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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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미로’서 ‘자아의 지도’ 찾는다


△ (왼쪽으로부터)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
· 생체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 분자생물학적 뇌 연구· <사이언스> 등에 다수 논문 발표
김용석 영산대 교수(철학)
·서양철학, 문화론 연구 ·저서: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미녀와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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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연구 발자취
  • ① 우주론에서 ‘창조신화’를 만나다
  • ② 자연을 거슬러 자연을 꿈꾸다

  • 인문의 창으로 본 과학의 풍경

    ①신화와 우주론
    ②유전자복제
    ③뇌는 마음을 얼마나 알까
    ④인간, 동물 그리고 진화
    ⑤인간과 로봇, 몸의 철학
    ⑥동양철학의 디지털문명답사
    ⑦수학과 미술의 물음, 아름다움이란
    ⑧우주개척시대, 지구 밖 인간의 존재
    ⑨나노과학과 미시역사의 눈
    ⑩세계와 입자의 근원

    우렁쉥이는 커서 안착하면 뇌 소멸
    인간뇌 복잡성은 인간삶 암시
    마약도 순교도 뇌 즐거움 때문

    “인간 삶에서 뇌가 모든 것이라는 입장이신가요?”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신희섭 박사는 담담히 되물었다.

    인문학자인 내가 뇌에 대한 과학연구의 중요성을 역설했을 때, 마음이 뇌이고 뇌가 곧 마음이라는 것이 오늘날 뇌과학의 근본 입장이 아닌가 하고 물었을 때, 그리고 우리말의 ‘마음’(心)은 심장을 떠올리지만 서양말 ‘마인드’는 사유의 의미를 어원에 담아 뇌를 떠올리게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되물었던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실험실 방문에 앞서 대화로 시작되었다. 나는 대화가 잘 되리라고 직감했다. 과학자인 그는 오히려 과학주의적이고 ‘뇌 환원주의’적일 수 있는 내 말에 일단 제동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는 우선 뇌 없이도 생명은 있다는 것으로 뇌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해면동물은 신경 없이 세포가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체를 이룬다. 이런 생물은 간단하지만 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신경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동물은 뇌가 필요 없다(식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렁쉥이는 바닷속을 헤엄치는 유생 때에만 뇌를 갖고 있다. 다 자라면 한 곳에 들러붙어 바닷물에 있는 미립자를 먹이로 걸러 먹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뇌는 소멸한다.

    인간처럼 운동뿐만 아니라 상호관계, 판단, 의사결정 등을 위해서는 당연히 더 복잡한 뇌가 필요하다. 따라서 삶은 복잡하지만 덜 편할 수 있다. 덜 편한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 신 박사의 과학적 설명에 자연스레 인간과 인생을 보는 지혜가 스며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불교의 참선에 관심 있다는 건 아마 ‘부동의 편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결국 뇌를 가상적으로 작동 없는 상태로 둔다는 뜻이 아닐까. 이는 또한 ‘부동을 즐기는 존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연관되지 않을까.

    “뇌 없이도 생명은 있다”


    △ 철학자 김용석 교수와 뇌신경과학자 신희섭 박사가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안 신 박사의 실험실에서 두툼한 인간 뇌지도 책을 보면서 뇌와 마음에 관한 철학과 과학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그러고 보면 진화의 역사에서 뇌가 주인공이 된 건 얼마 안 된다. 물론 이러한 진화에는 ‘창발적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포유류의 출현에서 이런 진화 과정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창발성은 진화의 각 단계가 여러 요인의 단순한 총화가 아니라 그로부터 새로운 성질이 출현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창발적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뇌는 몸에 대해 ‘기댐’과 ‘끌어안음’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체로서 뇌는 몸에 의존적이지만 몸 전체를 ‘공존의 상황’으로 끌어안아 유지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상과학의 수준에서 말하면, 뇌는 몸을 옮겨다니며 새로운 존재 방식을 찾고 몸을 통제할 수도 있지만, 몸 없이는 지나가는 강아지에게도 꼼짝없이 먹힐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명의 종결을 뇌사로 규정하는 데에 물음표를 찍을 수도 있다. 반면 간이나 심장을 이식받으면 동일한 사람일 테지만 뇌를 이식받는다면 다른 사람이라는 가설적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뇌 이식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물음표이다.

    뇌는 ‘따로 또같이’ 인 네트워크
    인간의 주체도 하나이기보다
    견제-균형시스템 자치가 아닐까

    ● 뇌는 여전히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매혹적인 탐구 과제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가설이 많은 이유도 이때문이다. 그 가운데 ‘뇌가 뇌 스스로를 위해’ 발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다. 뇌는 쾌감을 느끼며 쾌감을 위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독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마약에 중독되면 몸은 망가지더라도 뇌는 지속적으로 마약을 요구한다. 이때에 뇌는 몸과 독립적으로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명령을 내린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성행위를 원하는 것도 뇌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 훌륭한 행위를 하는 것도 ‘뇌의 즐거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던가, 몸을 아끼지 않는 순교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행동들은 뇌에 보람의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신 박사는 이런 현상들을 “뇌가 보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해학적 기질을 발휘했다. 그건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말을 패러디한 것 아니냐는 내 말에 그는 껄껄 웃었다. 나도 마주보고 웃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종교에 대한 불경의 태도는 아니다. 이는 한 분야의 과학자가 자기 사고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어디까지 펼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 이 무렵에 우리는 하늘의 비유에서 땅의 현실로 내려왔다. 실험실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뇌의 작용기전에 관한 신경과학 및 유전학 연구를 통해 뇌 기능에 관한 중요한 발견을 계속해 오고 있다. 신경세포 안의 칼슘 농도를 높게 유지하자 쥐의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 이른바 ‘똑똑한 생쥐’를 개발했으며, 티(T)-형 칼슘통로 유전자가 결손된 생쥐의 생리기능 연구를 통해 뇌가 외부의 자극을 능동적으로 선별 조절할 수 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실용적 차원에서 간질 치료나 획기적인 진통제 개발의 가능성과 연관돼 있다.

    실험실 한 쪽에는 출입이 통제된 작은 방이 있는데, 그 안에 실험 대상인 생쥐들을 다양하게 분류 보관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데 쥐를 통한 연구가 갖는 한계를 짚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뇌가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연구의 출발점에 두고 있다. 인간 뇌가 복잡 시스템이라는 것은 뇌의 각 부분 세포의 종류와 배열이 다르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관은 객관, 객관은 주관으로

    이는 간, 신장, 심장 등의 기관과 매우 다른 점이다. 같은 뇌세포라도 그것을 보조하는 교화세포의 구성이 다르다. 이는 뇌가 그 자체로 매우 다양한 영역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이 영역들이 독립체가 아니라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 계층이 있다고 추정한다. 그는 뇌가 하나의 슈퍼컴퓨터라는 입장을 비켜가는 듯했다. 오히려 뇌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영역들의 세밀하면서도 광대한 병렬 네트워크라는 입장인 것 같았다.

    뇌의 각 부분이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영역들이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뇌가 자신의 쾌락을 위해 특정 명령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부분이 견제하고 감시할지 모른다. 따라서 ‘뇌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몸을 속이고 있구나’ 하는 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 이런 과학적 가설들은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에게 하나의 견고한 주체라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다양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자체를 주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자아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복수의 자아가 발현하는 것을 상징하지 않을까.

    뇌 연구는 출발부터 다학제적일 필요가 있다. 모든 학문의 대상은 이미 그 학문을 초월해 있다. 다만 그 학문이 다른 학문 분야들과 엮은 네트워크의 어딘가에 걸려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어디를 추적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대화의 마무리에 그는 성철스님의 법어집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能隨境滅 境逐能沈 境由能境 能由境能)”. 뇌과학자가 이런 ‘논리의 맴돌이’에서 마음이 갈 길을 찾는 것은 뇌 연구가 결국 인간의 자아 탐구라는, 어렵지만 손을 놓을 수도 없는 과제라는 것을 일러준다.

    김용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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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자학 발자취
  • 우주론에서 ‘창조신화’를 만나다

  • 인문의 창으로 본 과학의 풍경

    ①신화와 우주론
    ②유전자복제
    ③뇌는 마음을 얼마나 알까
    ④인간, 동물 그리고 진화
    ⑤인간과 로봇, 몸의 철학
    ⑥동양철학의 디지털문명답사
    ⑦수학과 미술의 물음, 아름다움이란
    ⑧우주개척시대, 지구 밖 인간의 존재
    ⑨나노과학과 미시역사의 눈
    ⑩세계와 입자의 근원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철학)

    ·근대성과 탈근대성 등 연구, 문화론 연구
    ·저서: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

    ·생명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장기이식용 무균돼지 연구
    ·2004년 2월 치료 목적의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세계 처음 확립
    ·1999년 2월 젖소 복제 성공(영롱이)

    20세기 들어와 과학은 더욱더 우리의 일상에서 먼 곳으로 ‘도망쳤다’. 생물학도 그렇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아는 생물들을 우리가 친숙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분자생물학, 유전학, 화학의 분석 기호들로 분해하여 다룬다. 그리곤 놀랄 만한 힘과 능력을 갖고 우리가 사는 세계로 되돌아온다. 알 수 없는 곳에 사는 놀라운, 또는 무서운 힘의 소유자, 그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물학의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함께 들어간 실험실이 바로 그 이미지가 사는 장소일 게다. 방진복을 입고 쑥스런 모자를 쓰고 공기 샤워로 세상 먼지를 털어내고 들어가는 곳.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런 식으로 분리되고 격리된 세계다.

    그곳에선 돼지난소에서 미성숙한 난자를 추출하여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큰 탁자에는 외국인 유학생도 두 명 있었다. 난자를 기구로 붙잡아 핵을 떼내고, 체세포의 핵을 밀어넣는 모습이 액정화면으로 생중계된다. 그것은 복제된 돼지가 되어 우리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다.


    △ 생명과학자 황우석 교수와 철학자 이진경 교수가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안 황 교수의 실험실에서 만나 유전자복제에 담긴 생물학과 철학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인공생명은 기계경계 못넘고
    다친 몸 자연상태화 기여뜻
    원본중요성 시대 초월

    ● 사실 20세기 후반의 과학사에서 ‘유전자’라는 개념만큼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념이 있을까? 최근에는 ‘우울증 유전자’, ‘비만 유전자’, 심지어 ‘불륜 유전자’까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범죄수사나 친자감별에 사용되는 유전자 감식도 그렇다. 어떤 것도 유전자 개념을 들이대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유전자는 이제 다른 개념들을 침묵 속에 가두는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황 교수는 이런 ‘유전자 담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지금까지 유전자 연구를 통해 우리가 알아낸 것은, 언어로 치면 한글 자모음을 알게 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생명의 비밀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고 과장이라는 것이다. 유전자 만능론 식의 생각이 대중매체를 통해, 그리고 유전자라는 개념 자체가 함축하는 ‘개념적 환상’을 통해 유포되고 부풀려진 것은 분명하다. 가령 유전자만 있으면 공룡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턱없는 상상이다. 살아 있는 공룡알(난자)이 없으면 복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은 복제본의 편
    또다른 진화 시작된건 아닌가

    ● 그렇지만 분자생물학이나 유전공학은 생명과 기계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던 오래된 통념을 깨부순 게 아닐까?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 자크 모노는 세포를 “화학적으로 작동하는 기계”라고 정의한 바 있고, 그의 동료 프랑소아 자콥은 생명을 특별한 실체로 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며, 생명과 기계가 근본적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유전학의 발전이 생명에 대한 고정된 통념으론 또 다른 생명을 이해할 수 없음을 알게 해주지만,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볼 순 없다고 말한다. 생명이란 ‘물질+정신+알파’여서 기계적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그게 생명이 숭고한 이유라는 것이다. 세간의 상식 안에 있는 것일까, 그것과 화해하려는 것일까?

    “공룡복제 영화에서나 가능”

    그래서인지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또 하나의 지점인 인공생명에 대해서도 그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유전학이나 인공생명 연구가 그런 바람의 범위 안에, 생명과 기계의 넘을 수 없는 선 안에 머물러 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전자 복제가 필경 함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원본과 복제의 관계에 대한 것일게다. 단순화하면, 복제된 것이 원본보다 우월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사실 원본의 우월성에 대한 관념은 서양의 경우 플라톤 이래 오래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철학이 플라톤주의를 비판하면서 원본으로 회귀하는 길을 끊어버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본 없는 복제, 또는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적 징후 아닌가! 더구나 유전자를 조작하고 변형하는 것은 좀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황우석 교수는 원본의 중요성은 시대를 초월해서 강조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는 변형된 복제본은 원본과 비교하자면 자연환경에 대해 아주 열악한 능력을 지녀, 기형이나 원인모를 급사, 비자연적 발육 등이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면 원본은 수천년 동안 환경에 적응한 것이어서 안정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수준의 문제라면,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이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시간은 복제본의 편인 셈이다.




    ● 그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나 장기이식용 복제동물의 생산은 “좀더 나은 것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인간의) 신체를 자연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임을 역설한다. 물론 병이 없는 상태, 결함이 없는 상태가 자연상태인가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여전히 남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개량이란 동식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개량이지만 자연(‘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개악”이라는 인상적인 말을 덧붙인다. 지나치게 젖이 많이 나오게 된 젖소나, 너무 이삭이 많아 바람만 좀 세게 불어도 꺾어지는 벼가 그런 경우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개량이란 이름의 “반자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여기서도 그는 세인의 ‘양식’에 훨씬 가까워보인다. 그의 ‘철학’이 그래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감수해야 했던 많은 비판적 시선 속에서 그렇게 보게 된 것일까? 세인의 양식(‘여론’)을 거슬러서는 실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물학 자체가 충분히 정치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병 없는 상태가 자연일까

    유전자 복제가 형질전환을 위해 상이한 종의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탄생한 것은 종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거미줄 원료를 생산하는 염소, 인간의 신장을 생산하는 돼지 등. 좀더 나아간다면 말의 발을 가진 개나 아가미를 가진 고양이 등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자연교배되고 대를 이어 재생산된다면 하나의 독립적 형질로 굳어질 것이다. 물론 아무 것이든 섞을 순 없으며, 수용 가능한 유전자와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것이다. 수용 가능한 것이란 상이한 유전자가 ‘공생’하는 것을 뜻하며, 그렇게 해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생태계에서 수용 가능한 것임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종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하지만 다른 박테리아에게 잡아먹혔지만 ‘소화되지 않은 채’ 살아남은 박테리아가, 그를 잡아먹은 박테리아와 공생하게 되면서 핵이 있는 진핵생물이 탄생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나 식물 세포의 엽록체는 이처럼 다른 생물체 안에 살며 공생하게 된 박테리아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유전자의 ‘공생’ 역시 새로운 종의 탄생이나 종의 벽을 넘는 진화의 선을 그리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자연적 진화와는 다른 또 하나의 진화의 경로가 존재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이는 아마도 유전자 복제와 변형을 통해 생물학 자체가 변형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일 게다.

    유전자 변형은 이미 생물학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 식으로 말해보자. “자, 어디로 갈까? 변이의 바다는 넓고도 광대해!”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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