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신비주의나 오컬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 '카발라' 아니 카발라는 듣지 못했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환타지나 퇴마류의 일본 만화 배경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나타나는 기괴한 도형이며 글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도판이며 글자들, 또 그림들의 반 정도는 티벳이나 힌두의 것이고 나머지는 카발라에서 따온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컬트 경향의 만화나 영화, 신비주의적 관점의 책에서 한번씩 등장하는 이름이긴 했지만 그것이 뭔지는 나도 솔직히 몰랐다. 하지만 궁금함을 가슴에 담고 살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눈에 띄자마자 망설임없이 책을 잡긴 했는데...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선 책일 읽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책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상한 원과 도형들, 상형문자 같은 그림과 글씨들. 난해하다. 순전히 지식적인 호기심으로 카발라를 알아보려고 한 내게 이 책은 카발라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만족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여기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카발라라는 것의 설명이 아니라 그 신비에 접근하는 방법인듯 하다. 한때 많이 유행했던 수행 방법을 알려주는 서적의 일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확실히 무게가 있고 사상과 철학도 있는듯하다. 하지만... 현재 내 공력으론 장님 코끼리 만지기. 풀지 못하는 암호문을 들고 있는 느낌. 카발라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대의 신비주의 철학(?)에 발끌을 슬쩍 담궈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듯 싶다. 이런 쪽에 조예가 깊거나 아니면 정말 코드가 통하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을 책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나의 무지에 슬퍼지는 순간.... ㅠ.ㅠ
초콜릿과 설탕이 결합된 순간부터 이 세상에는 수많은 초콜릿 중독자들이 양산되었을 것이다. 마약이나 니코틴, 알콜처럼 그 폐해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잡히지 않지만 일단 초콜릿을 맛보고 그 맛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은 극히 예외에 속한다. 나 역시 초콜릿을 좋아하고 거의 중독자에 속한다. 치과 의사가 아무리 강경하게 이 초콜릿의 해악을 (초콜릿 자체보다 그 속에 든 설탕의 탓이겠지만) 외친다 해도,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른다해도 난 이 초콜릿과 헤어질 수 없다. 이것은 아마도 전 세계에 수많은 초콜릿 애호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래서 초콜릿에 대한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가벼운 읽을거리를 예상하고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하지만 입안에 살살 녹는 가볍고 달콤한 내용만은 아니란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맛은 뭐랄까... 설탕이 가미되지 않은 초콜릿의 그 씁쓸함과 같다고 할까...?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의 원산지가 남미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스페인의 침략을 통해 이 카카오가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피상적인 사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을 때 얼마나 많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초콜릿을 위해(또 초콜릿과 금으로 대표되는 부를 위해) 희생되었을까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그 달콤하기만 한 초콜릿이 남아메리카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었고 또 유럽에서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는 설탕을 넣지 않은 초콜릿처럼 쓰다. 하지만 이런 달콤함과 씁쓸함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비교적 객관적인 내용은 초콜릿 역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초콜릿의 맛만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원료에 대한 통찰력까지 생기고 말았다. 덕분에 초콜릿에 소비되는 돈의 비중이 더 높아질듯. 이런 것을 두고 아는게 병이라고 하는건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읽어야 한다는 얘기에 마취되서 시작했던 책. 솔직히 페이지를 넘기긴 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얘기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비트의 개념과 그 응용들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당연히 그대로 증발을 해버렸다. 최근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에 있는 지하철용 책(가볍고, 부피 작고, 진도가 잘 안나가는)이 바닥난 관계로 이 책을 다시 시작했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내가 좀 똑똑해진건지 아니면 내가 사는 세상이 그 책만큼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놀랄 정도로 쉽게 넘어가고 재미있었다. 뜻도 모르고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귀에만 익었던 adsl, isdn, 동기, 비동기 방식들과 그것의 근간이 되는 비트의 전송 개념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고 이제는 퇴물 취급하는 모뎀과 광통신 전송, 마우스와 컴퓨터의 환경 등이 얼마나 오래 전에 나타났는지 알면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런 개념들이 만들어지거나 확립되어 있었다니.이 책을 보면 과학과 예술이 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피타고라스부터 시작된 과학과 예술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대학원 때 인도음악 연구를 강의했던 교수가 라가 음계 체계를 설명하면서 위상 기하학을 강의해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던 과거가 갑자기 떠오른다. 과학과 예술의 공통점. 논리와 상상력. 결국 과학도 상상력의 산물이란 것을 다시 느낀다. 공상과학소설이나 만화, 영화에 등장하던 소위 말도 안되는 상상들이 얼마나 빨리 과학자들에 의해 현실화가 되고 있는지. 훌륭한 과학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져야만 가능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좀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책에서 놀랍게도 한국이 2번이나 언급된다. 아이들의 머리 속에 무지막지하게 지식을 쑤셔넣는 나라로. 이 나라에서 대학 4년의 교육은 마라톤 풀코스를 뛴 선수에게 암벽타기를 시키는 것과 같다고 한 그의 말이 참 공감이 된다.우리의 교육은 교육제도건, 부모건 입과 행동이 다르다. 절대 상상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사고와 튀는 행동을 용서하지 않고 엄청난 제재를 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발한 상상력이 구체화되서 과학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비유에 등장했던 포항이란 지명. 처음에는 해석하기 힘든 라틴어나 뭐 그리스어 단어인줄 알았더니 문장 전체를 보니까 우리의 제철도시 포항이었다. 왜 포항이 등장했을까? 포항공대 때문일까 포항제철 때문일까? 어쨌든 포항으로서는 상당한 선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포항공대 때문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씁쓸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다. being digital은 1995년에 씌어졌다. 1994년에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수정해 엮은 책...비교적 빠르게 이 시대를 따라가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결국 1999년 가을의 나는 1995년의 흐름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 겨우겨우 소화를 했지만 결국 내가 받아들인 것은 이미 몇년이나 늦은 흐름이고 이들은 또 저 앞에서 새로운 이론과 개념을 정리하고 있겠지... 상상력이 거의 사라져버린 지금의 나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어떤 책을 고를 때 나름대로 이건 편하게 술술 볼 책, 이건 뭔가 깊이있는 내용과 알맹이를 만나리라 기대하는, 나름대로의 선별을 한다.나무의 신화를 고를 때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나무에 관련된 신화와 전설을 만날 자세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제목만 보고는 쉽게 생각했던 책. 최근 줄기차게 인기를 얻고 있는, 텍스트를 하나 잡아서 얘기를 풀어가는 가벼운 류의 글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을 말한다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으로 생각했다가 딱딱한 것이 씹히는 결코 달지 않은 내용물을 만나는 것처럼, 고생은 좀 했지만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내용에 감탄하거나 아니면 욕이 나올 때 저자를 확인하는 버릇대로 찾아봤더니 이 책의 저자는 수목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자크 브로스는 오히려 신화학이나 풍속학쪽에 조예가 엄청 깊은 것 같다는 느낌. 유럽, 아시아 대륙의 고대 문화권에서 나무가 가지는 의미를 풀어놓은 것이 내용인데 브로스가 사는 문화권이라 그런지 유럽 문화권에서 각 나무들의 의미나 문화적인 상징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볼핀치류의 그리스 신화에 익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리스 신화의 원시적인 면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신화의 덜 정제된 거친 면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상대적으로 아시아권에서 나무가 갖는 의미나 상징성에 대해서는 오류도 발견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 학자들의 아시아에 대한 한계와 오류는이런 류의 책을 볼때마다 느끼는 아쉬움... 아마 이 문제는 그쪽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인듯 싶고.. 책 전체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무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요약서 내지는 사전적인 느낌.... 하지만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 건조한 사실들 속에 작가의 사상이 세련되게 녹아서 표현된다는데 호감이 많이 간다.어떻게 사실 속에 자신의 주장을 그렇게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는지 정말 부럽다는 느낌과 질투를 계속 느꼈다. 굳이 왜 그러냐고 이유를 설명하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율리시즈를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고... 나무의 신화로 다시 돌아가면 신성화된 숲과 나무가 어떻게 속화되고 파괴됐는지 그 책임을 한때 절대 선이었던 기독교에 돌리고 있다. 기독교가 신화학과 민속학에 끼친 그 전 세계적이고 광범위한 해악(?)에 대해서 유럽 학자들의 아쉬움과 나름대로의 고해가 줄을 잇고 있는데 그것 역시 요즘 이 계통 학문의 한 경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되는 예(특히 오딘과 연관된)와 텍스트를 보면서 많은 유럽의 민속이나 신화학자들처럼 그 역시 프레이저의 아들들 중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고.어쨌든 읽다 보면 사라진 전설이나 제의, 그리고 더불어 파괴된 자연에 대한 아쉬움이 저절로 들게 하는 정말 절묘한 어법과 논리전개였다. 자연 친화적인 인간의 가치관이 기독교의 성세로 어떻게 변화되고 자연과 숲이 파괴되어 갔는지를 느끼게 해준 책. 고대인은 자연을 신으로 외경했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야 겨우 자연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외경과 두려움.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의미가 다른 두 단어의 차이를 내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가벼운 텍스트 중심의 역사물에 좀 싫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모처럼 좋은 책을 읽은 느낌이라 뿌듯하다. 언제 시간이 나면 황금의 가지와 함께 나란히 펼쳐놓고 다시 정독을 하고 싶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아주 중요한 내용에서 오류 비슷하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들이 간혹 있다. 문맥이나 앞뒤 내용의 흐름으로 볼 때 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원전을 확인할 수 없는 독자로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미 파악을 해야만 해서 잘못된 내용을 머리에 집어넣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만약 개정판이 나온다면 그런 부분들이 보충이 되면 좋을듯...
소위 주류 고고학에서 학문적 가치가 전혀 없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상 고고학류의 책이다. 하지만 주류 고고학에서 뭐라고 하건 대중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엄 헨콕은 수긍이 갈 논리로 자신의 이론을 풀어나가고 있다. 사실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한 논란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사라진(혹은 사라졌다고 믿는) 고대 문명에 대한 향수는 우리 잠재 의식 속의 한 기억인 마냥 끈질기게 남아서 계속 주류 학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대중 속을 파고들고 있다.막말로 핸콕을 비롯한 이 상상 고고학계의 주장이 모두 말도 안되는 허구고 가짜라고 치더라도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은 차갑고 재미없는 사실보다는 잘 포장되고 논리적인 이 소위 '가짜'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전 세계에 걸쳐 펼쳐져 있는 다양한 고대 문명에 대한 조사, 문헌과 유물에 대한 탐구, 천문학, 수학적 지식까지. 단순히 상상력만을 발휘해서 만든 것이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신의 지문> 상권을 읽었을 때 그 꽉 짜인 논리에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옛날 지도를 하나 던짐으로 시작된 문제 제기. 다양한 예와 연구를 바탕으로한 논리 전개. 하권으로 이어질 내용과 결말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었다. 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약간은 용두사미라는 느낌의...허탈한 기분. 하권에서 제시되는 이집트와 피라미드 얘기는 상권이 주는 그 신선함과 상큼함의 여운을 뒷받침하는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의 나열들. 기분 좋을 정도로 치밀하고 꽉 짜여진 구조가 허물어지는 느낌이 참 아쉬웠고 꼼꼼히 읽어봤을 때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결말도 미진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안의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서 자신만이 잘난줄 알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 우리가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문명과 과학 등 그 대단한(?) 것들이 정말 그렇게 큰 업적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했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이고 사실이라고 100% 자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잊혀진 길을 찾아 헤매 오랫동안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처녀지로 들어서는 느낌. 그런 탐험가의 설레임을 <신의 지문>은 독자에게 주고 있다.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