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다 - 정보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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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읽어야 한다는 얘기에 마취되서 시작했던 책. 솔직히 페이지를 넘기긴 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얘기인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비트의 개념과 그 응용들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당연히 그대로 증발을 해버렸다. 최근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에 있는 지하철용 책(가볍고, 부피 작고, 진도가 잘 안나가는)이 바닥난 관계로 이 책을 다시 시작했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내가 좀 똑똑해진건지 아니면 내가 사는 세상이 그 책만큼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놀랄 정도로 쉽게 넘어가고 재미있었다. 뜻도 모르고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귀에만 익었던 adsl, isdn, 동기, 비동기 방식들과 그것의 근간이 되는 비트의 전송 개념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고 이제는 퇴물 취급하는 모뎀과 광통신 전송, 마우스와 컴퓨터의 환경 등이 얼마나 오래 전에 나타났는지 알면서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런 개념들이 만들어지거나 확립되어 있었다니.

이 책을 보면 과학과 예술이 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피타고라스부터 시작된 과학과 예술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대학원 때 인도음악 연구를 강의했던 교수가 라가 음계 체계를 설명하면서 위상 기하학을 강의해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던 과거가 갑자기 떠오른다. 과학과 예술의 공통점. 논리와 상상력. 결국 과학도 상상력의 산물이란 것을 다시 느낀다. 공상과학소설이나 만화, 영화에 등장하던 소위 말도 안되는 상상들이 얼마나 빨리 과학자들에 의해 현실화가 되고 있는지. 훌륭한 과학자는 뛰어난 상상력을 가져야만 가능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좀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책에서 놀랍게도 한국이 2번이나 언급된다. 아이들의 머리 속에 무지막지하게 지식을 쑤셔넣는 나라로. 이 나라에서 대학 4년의 교육은 마라톤 풀코스를 뛴 선수에게 암벽타기를 시키는 것과 같다고 한 그의 말이 참 공감이 된다.

우리의 교육은 교육제도건, 부모건 입과 행동이 다르다. 절대 상상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사고와 튀는 행동을 용서하지 않고 엄청난 제재를 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발한 상상력이 구체화되서 과학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비유에 등장했던 포항이란 지명. 처음에는 해석하기 힘든 라틴어나 뭐 그리스어 단어인줄 알았더니 문장 전체를 보니까 우리의 제철도시 포항이었다. 왜 포항이 등장했을까? 포항공대 때문일까 포항제철 때문일까? 어쨌든 포항으로서는 상당한 선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포항공대 때문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씁쓸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다. being digital은 1995년에 씌어졌다. 1994년에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수정해 엮은 책...비교적 빠르게 이 시대를 따라가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결국 1999년 가을의 나는 1995년의 흐름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 겨우겨우 소화를 했지만 결국 내가 받아들인 것은 이미 몇년이나 늦은 흐름이고 이들은 또 저 앞에서 새로운 이론과 개념을 정리하고 있겠지...

상상력이 거의 사라져버린 지금의 나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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