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고를 때 나름대로 이건 편하게 술술 볼 책, 이건 뭔가 깊이있는 내용과 알맹이를 만나리라 기대하는, 나름대로의 선별을 한다.나무의 신화를 고를 때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나무에 관련된 신화와 전설을 만날 자세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제목만 보고는 쉽게 생각했던 책. 최근 줄기차게 인기를 얻고 있는, 텍스트를 하나 잡아서 얘기를 풀어가는 가벼운 류의 글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을 말한다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으로 생각했다가 딱딱한 것이 씹히는 결코 달지 않은 내용물을 만나는 것처럼, 고생은 좀 했지만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내용에 감탄하거나 아니면 욕이 나올 때 저자를 확인하는 버릇대로 찾아봤더니 이 책의 저자는 수목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자크 브로스는 오히려 신화학이나 풍속학쪽에 조예가 엄청 깊은 것 같다는 느낌. 유럽, 아시아 대륙의 고대 문화권에서 나무가 가지는 의미를 풀어놓은 것이 내용인데 브로스가 사는 문화권이라 그런지 유럽 문화권에서 각 나무들의 의미나 문화적인 상징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볼핀치류의 그리스 신화에 익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리스 신화의 원시적인 면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신화의 덜 정제된 거친 면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상대적으로 아시아권에서 나무가 갖는 의미나 상징성에 대해서는 오류도 발견되긴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 학자들의 아시아에 대한 한계와 오류는이런 류의 책을 볼때마다 느끼는 아쉬움... 아마 이 문제는 그쪽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풀어야할 숙제인듯 싶고.. 책 전체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무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요약서 내지는 사전적인 느낌.... 하지만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 건조한 사실들 속에 작가의 사상이 세련되게 녹아서 표현된다는데 호감이 많이 간다.어떻게 사실 속에 자신의 주장을 그렇게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는지 정말 부럽다는 느낌과 질투를 계속 느꼈다. 굳이 왜 그러냐고 이유를 설명하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율리시즈를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고... 나무의 신화로 다시 돌아가면 신성화된 숲과 나무가 어떻게 속화되고 파괴됐는지 그 책임을 한때 절대 선이었던 기독교에 돌리고 있다. 기독교가 신화학과 민속학에 끼친 그 전 세계적이고 광범위한 해악(?)에 대해서 유럽 학자들의 아쉬움과 나름대로의 고해가 줄을 잇고 있는데 그것 역시 요즘 이 계통 학문의 한 경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되는 예(특히 오딘과 연관된)와 텍스트를 보면서 많은 유럽의 민속이나 신화학자들처럼 그 역시 프레이저의 아들들 중 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고.어쨌든 읽다 보면 사라진 전설이나 제의, 그리고 더불어 파괴된 자연에 대한 아쉬움이 저절로 들게 하는 정말 절묘한 어법과 논리전개였다. 자연 친화적인 인간의 가치관이 기독교의 성세로 어떻게 변화되고 자연과 숲이 파괴되어 갔는지를 느끼게 해준 책. 고대인은 자연을 신으로 외경했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야 겨우 자연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외경과 두려움.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의미가 다른 두 단어의 차이를 내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가벼운 텍스트 중심의 역사물에 좀 싫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모처럼 좋은 책을 읽은 느낌이라 뿌듯하다. 언제 시간이 나면 황금의 가지와 함께 나란히 펼쳐놓고 다시 정독을 하고 싶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아주 중요한 내용에서 오류 비슷하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들이 간혹 있다. 문맥이나 앞뒤 내용의 흐름으로 볼 때 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원전을 확인할 수 없는 독자로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미 파악을 해야만 해서 잘못된 내용을 머리에 집어넣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만약 개정판이 나온다면 그런 부분들이 보충이 되면 좋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