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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먹먹함.
책을 읽고난 내 감정은 이 단어로 요약이 되겠다. 사람에 따라 건드려지는 감정선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게는 그 건드려지는 깊이가 아주 깊고 넓은... 후유증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처음 읽어나갈 때는 엄마의 말뚝을 반복해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초반부는 엄마의 말뚝과 거의 쌍둥이에 가까울 정도로 흡사하다. 하지만 엄마의 말뚝에서는 세련되게 치장하고 문학적으로 정제됐던 부분들이 이 싱아~에서는 날 것에 가깝게 드러난다.
박완서 선생 자신이 토로했듯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 단어와 표현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놓고 싶었다는 그 의도에 걸맞게 내가 전혀 몰랐거나, 혹은 기억 저 아래 깊숙이 파묻혀서 거의 완전히 잊고 있었던 단어들이 여기선 정말 풍부하게 살아서 생동하고 있다. 한 백년 쯤 지나면 문학이 아니라 언어학에서 1990년대에 쓰여진 한국어 어휘의 보고로 연구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하게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고 했다는 게 정말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로 표현 하나하나가 날 것인 양 보이면서도 아주 정교하고 또 신선하다. 쓰고 싶은 걸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작가의 공력이랄까.
굳이 비유를 하자면 경지에 다다른 무림 고수의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검무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