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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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원하고 소설을 평생 벗 삼을 것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다. 특히 아래에 소개하는 소설의 네 가지 분석틀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설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기를 바래본다.

 

 

p16

오카노야 가즈오는 자신의 저서 <새의 노래에서 인간의 언어로>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동물행동학의 기본으로 제시한 네 가지 질문이라는 것을 소개했다. 동물의 행동에 관한 다음 네 가지 사항이다.

1-메커니즘 2-발달 3-기능 4-진화

틴베르헌의 네 가지 질문이 실은 소설을 읽을 때의 접근법으로서도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18~

소설의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마니아다운 독서법일 것이다. 작가 편에 서는 독서법이라고 무방하다. ...... 작가는 그러한 요소를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독자에게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 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있지? 이 소설은 왜 이렇게 뭐가 뭔지 모르겠지? ...... 소설도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해하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발달이라는 것은 한 작가의 인생에서 어떤 타이밍에 그 작품이 나왔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는 일이다. ...... 한 작품만 읽었을 때는 얼른 다가오지 않던 이야기가 그 전 작품, 그 전전 작품까지 찾아 읽다보면 아하 이 테마가 이런 식으로 발전했구나하고 퍼뜩 이해되는 일이 있다. ...... 한 작가로 좁혀 들어가 그 과정을 더듬어보는 일을 통해 그 작가의 작품을 한 편만 읽었을 때는 놓쳤던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도 소설을 읽고 나면, 아니 읽기 전과 읽는 중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책 뒤쪽이나 날개에 있는 설명을 자주 참고한다. 소설을 다 읽고 작가 연표를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이 사람이 이 글을 쓸 때는 이 때즘이었는데 나중에 이런 일도 겪고 이렇게 살다가 갔다는(아니면 살고 있는) 걸 알아보는 게 재미있다.

 

 

진화에서는 사회의 역사, 문학의 역사 속에서 그 소설이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어떤 소설이든 그 사회와 시대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고 나아가 앞서 나온 작품, 동시대의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영향을 받으며 쓰이게 된다.

 

...... ‘기능이라는 것은 한 편의 소설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갖게 되는 의미를 가리킨다. 작가가 인간의 선량함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때 독자는 거기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받아들인다. 혹은 자신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써냈다면 독자는 그것을 읽고 조금이나마 작가에 대해 이해한 듯한 마음이 든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조명하거나 인간의 심리적 어둠을 추구한다는 것도 모두 한 편의 소설이 작가와 독자 양쪽에 대해 지닌 기능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가 어긋나는 일도 적지 않다.

 

 

소설의 진화기능을 고려할 때 잘 알려진 고전이 지금 재미가 없고 이해나 공감이 안 되는 문제가 설명이 된다. 고전이라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다른 문화권에서 수십년에서 수백년 전에 지어진 작품이니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여 만나려면 이런 분석틀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의 발달이나 진화에 대해 잘 알아도 한계는 있다. <데미안>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난다. 성장소설이니 헤르만헤세의 대표작이니 어떤 수식어와 비평을 읽어봐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전운이 감도는 백 년 전의 유럽 사회를 상상하는 게 잘 되지 않았다.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고 전쟁이 난다면 곧바로 징집이 되어야 할 청년이 느끼는 불안을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이 너무 소수인 것 또한 아쉽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5천년이라 해도 한글이 사용된 게 불과 백 년 남짓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역사인지. 한글 사용에 관한 사실을 찾아보니 훈민정음 반포는 1446년이었는데 한글이 국문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게 450년이나 지난 갑오경장(1894-1896) 때이란다. 다시 한 번 안타깝다.

 

 

p66

근대 소설에서는 작가가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그것이 등장인물의 참모습이었고 독자 또한 작가가 묘사한 대로 받아들이며 읽는 경향이 강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는 이러저러한 인간이라고 묘사되지만, 도스토옙스키라는 괴팍한 작가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뿐, 사실은 전혀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등의 의심은 독자의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 소설에서는 독자 스스로의 의식을 촉구하면서 그런 차이를 아예 전체조건으로 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 문학'이라는 작품에 적응을 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설명이다. 현대에 살고 있지만 근대에 태어나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고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근대의 무언가에 많이 익숙하다. 하지만 읽다 보면 현대 문학의 맛에 좀 더 길들고 그러다가 좀 더 빠져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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