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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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책을 잃다가 분인(分人)’에 대한 글을 보고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개인은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단위가 아니며 상황과 역할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있는데 이를 분인(分人)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여러 가지 정체성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위한 처방이라 하는데 아래 기사가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된다. 이 개념은 <나란 무엇인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작가의 말을 좀 더 듣고 싶어서 이 책을 잃게 되었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30129000523&md=20130201004841_AP

 

책을 읽는 방법으로 우선 '슬로 리딩'을 권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 천천히 의미를 곱씹으며 읽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속독법에 반론을 제기하듯 속독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속독을 권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기관 같은 게 거의 없는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속독법을 매우 의식하고 쓴 글 같다. 무엇이든 성급하게 해치우는 것보다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은 건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p32

한 달에 책을 백 권 읽었다느니 천 권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사람들은 라면 가게에서 개최하는 빨리 먹기 대회에서 십 오분 동안 다섯 그릇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한 기름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며, 쓸데없이 머리 회전만 둔하게 하는 군살이다. 결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소량을 먹었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의 맛을 감칠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식가로 존경받을 것이다.

 

자랑삼아 하는 속독을 경계하는 말로 이해가 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책을 빨리 많이 읽는 사람은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은 늘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니 조금이라도 빨리 읽게 되고 읽다보면 권 수가 의도치 않게 불어나는 경우가 있다. 작가의 미식가운운하는 문장은 어쩐지 (조심스럽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느껴지는 면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니 많이 읽는 것일테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은 권수 자체를 자랑한다니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자랑을 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책의 권 수를 자랑하기엔, 너무 어렵지 않은가.

 

오독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글이든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독자가 약간의 착각을 보태어 자신만의 텍스트로 읽을 때 만들어지는 창조적인 오독이 유익하다고 설명한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면 책은 이제 작가를 떠나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고 개별 독자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글을 어디선가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보면 개별 독자에 맞는 고유한 독서를 굳이 '오독'이라고 해야하는지 의문이다. 각자의 독법에 맞게 읽히는 게 책의 본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베껴 쓰기를 비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p77

첫째로 이것은 음독과 같아서 베껴 쓰는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나머지 내용이나 문장에 대한 이해는 조금도 깊어지지 않는다는 난점이 있다. ...... 또 실제로 해 보면 알겠지만 한 글자, 한 구절, 구두점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베껴 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원본을 자주 확인하게 되고 그러나보면 문장의 흐름이 끊겨버려 정작 중요한 리듬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만약 경전 베끼기처럼 일종의 정신안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그 문장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반복하여 묵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매력적인 문체를 가진 작가를 만나기도 하고, 닮고 싶은 생각을 가진 작가를 만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필사해 보리라 마음먹은 책들이 있는데 이 작가는 이렇게 필사를 반대하고 있다. 아직 필사를 해 본적은 없으니 하게 되면 이 의견을 경고 삼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몇 권의 작품을 예로 들어 소설을 이해하는 다양한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본문 일부를 인용하여 밑줄을 그어 가면 여기는 이렇고 저렇게 생각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용된 소설을 저작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건 별로 재미없었지만 몇 가지 표현은 인상적이었다. 글에는 화살표가 있는 것 같다. 문장에 있는 작은 화살표, 단락과 글 전체에 나타난 화살표, ......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동감한다. 소설은 언제나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 내용이 어느 정도 알려진 소설도 재미있지만 낯설고 처음 보는 제목의 소설을 읽게 되면 기억이 오래 간다. 나도 이렇게 예고 없이 침입하는 소설이 좋다. 다음 장을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p135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교양이나 오락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겪을 수 있는 경험은 한정되어 있고, 더군다나 극한적인 상황을 경험하는 일은 더욱 드물 것이다. 소설은 그러한 우리의 인생에 예고 없이 침입하는 일종의 이물(異物)이다. 그것을 그냥 배제해버리고 말 것인지 아니면 잘 다듬어서 진짜와 같은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 것인지는 독자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 한 권의 책을 뼛속 깊이까지 완전하게 맛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창조적인 글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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