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들려준 이야기 - 인류학 박사 진주현의
진주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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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한국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미군 전사자 55구의 유해가 북한에서 하와이로 송환되는 일이 큰 뉴스가 되었다. 유해 송환은 앞선 6월 김정은과 트럼프의 싱가폴 회담에서 나온 결과로 비핵화 이전에 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주목을 받았던 또다른 이유는 유해를 대하는 미국의 의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타국에 묻힌 전사자의 유해 송환에 무척 공을 들이는 걸로 알려져 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 산하의 이 연구소는 하와이에 있는데 전 세계 어디서든 미군의 유해라면 이곳 연구소로 보내져 신원을 확인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고 있다. 신원 확인을 위해 한국전쟁 때 실종된 미군 가족 중 89%의 유전자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니 노력과 의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번에 돌아온 55구의 유해를 송환하는 의전은 국가 원수급이라고도 하고 부통령까지 참석해 전 세계에 미국의 자국민을 찾아오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8080302102269640001&ref=naver)

 

이 책의 저자 진주현 박사가 바로 이 유해가 도착한 하와이의 연구소에 근무한다. 유해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뼈가 갖고 있는 많은 정보와 이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뒷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뼈는 인간을 가장 깊숙이 이해하는 열쇠다.’ 읽고 나니 정말 뼈만으로 어떻게 많은 것을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선입견과 무식에 불과했다. 마치 사람의 정보를 기록한 블랙박스처럼 인종에서부터 성별, 사망당시 나이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뼈 속에 있는 세포로 DNA를 이용해 유전자 검사도 할 수 있단다. 물론 시간이 오래 지나 세포가 다 썩어 없어지면 DNA를 이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위의 미군 유해는 세포가 다 썩어 없겠지만 어쨌든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 신원 감식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 같다.

 

뼈에 관한 예상 못한 이야기와 정보들이 재미있고 쉽게 쓰여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여러 가지 놀라운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나라의 산후조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지적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산후조리를 안 하면 뼈에 바람이 들어가 고생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라도 출산을 하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목욕을 하지 말고 찬 것을 피하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반대로 출산을 하고 바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고 샤워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골반이 작고 아기 머리가 커서 상대적으로 골반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도 출산 당시 온 몸의 뼈가 모두 벌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저자도 이 의견의 신빙성을 의심하여 연구 자료를 뒤졌는데 골반뼈에 나타나는 인종 간 차이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산후 회복 단계에서 보이는 인종적 차이를 연구한 자료들도 결론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신생아의 머리 둘레에 관해서는 아시아인이 미국인보다 평균치가 작았다고 발표한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골반은 작고 아기 머리는 커서 출산할 때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도 모두 출산할 때 고통이 있는데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기초 체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아뭏튼 산후 조리의 효과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미진하고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크게 공감한다. 여름에 출산을 해 본 나로서는 무조건 시원하면 안 되고 에어컨을 켜면 안 되고 샤워도 하지 말라고 했던 내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답답함을 느꼈었다. 출산을 하면 출혈이 많아 체력 회복이 필요하니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체력 회복을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몇 십 년 전이라면 욕실과 방 사이의 온도 차가 크고 목욕 할 때 체력이 많이 소모되니 금지했던 것이고 요즘같이 방에 화장실이 붙어 있는 환경에서 무조건 샤워도 하지 못 하게 하는 건 불쾌감이 급증해 체력 관리나 신생아 돌봄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외에 산후 조리에 관해서는 열변을 토할 내용이 많지만 이 책의 주제와 많이 벗어나므로 여기서 줄이는 게 낫겠다.

 

역시 놀랍고 유익한 이야기 중에서 뒷부분에 창조과학이라 불리는 이슈에 대해 정리한 부분도 무척 유익했다.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므로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배치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종교와 과학이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간략하게 확인해 볼 수 있었다.

 

p270

생물의 진화 이론은 생물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적 도구다.

p278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고 종교는 과학을 대신할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175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해낼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와 알라의 은총을 왜 굳이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것일까.

......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종교를 무시하며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도 창조론자들의 노력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우리나라에 창조과학 열풍이 휩쓸었던 적이 있어 나도 그게 맞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분과 같이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노력 덕분에 바로잡히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때 학습된 것들은 참․거짓을 분별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좀 더 비판적으로 보고 건강한 영성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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