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2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 푸른나무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인터넷에서 '펌글'의 형태로 떠돌던 유시민의 '서른 살 사내의 자화상'을 책으로 다시 읽었다. 인터넷으로 읽고 난 다음 한 번의 클릭으로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쉬워 이런 저런 검색 끝에 그 원본이 실렸던 책을 발견한 것.

다름 아닌,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도서출판 푸른 나무)였다. 초판은 88년이었고 내가 사게 된 것은 2003년 개정판이었다. 활자화 된 것을 읽으니 인터넷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삼십. 흔히 하는 말로 '꺾어진 육십', 내 나이다. 세상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적학생', 이것은 사실 그 자체다. 나는 대학에 두 번 입학해서 두 번 다 제적당했다.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5만 원짜리 자취방이 내 보금자리이고 저금통장이나 처자식은 아직 없다. 나는 가난한 노총각이다. 혼자된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 드리지도 못하는 있으나 마나 한 아들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돈이 있는 동안에는 돈벌이를 안 한다. 그러나 건달은 아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미래가 하루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그가 바라는 미래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미래란 별 것이 아니다. 열심히 노동하는 삶들이 천대 받지 아니하고 사람답게 사는 사회, 셋방살이 한맺힌 가난한 이들이 작지만 자기 집을 갖는 사회, 자기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사회, 평생을 눈물과 비탄 속에 살아가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그리운 혈육을 만날 수 있는 나라, 강대국에 매이지 않고 우리 운명을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가는 나라, 이런 사회, 이런 나라가 바로 내가 간절히 바라는 미래인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전히 그가 원하는 그 소박한 미래를 얻지 못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국회의원이 되어 있다. 유시민처럼 어울리지 않는 국회의원도 없을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이 책에는 유시민 외에도 아픔을 먹고 자란, 지금은 다들 한 이름 걸고 사는 '젊은 활동가들의 성장 체험'이 뼈저리게 녹아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감동적인 시인과 소설가가 되는 길이 쉽지 않음을 알고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들은 정말이지 가난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멱을 감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늘 배가 고팠고, 그 고픈 와중에도 공부가 하고 싶어 눈에 불을 켰고, 늘 월사금이 밀려서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어린 시절을 보낸 최인석은 밥은 굶지 않았어도 늘 자신의 마음과 불일치하는 부모님과의 의견 차이로 고통스런 성장기를 보냈다. 방학숙제를 계기로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책읽기를 좋아하게 된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전망 밝은 전자공학과를 추천하였다. 제2외국어로 불어를 공부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의 부모는 독일어를 배우라고 하였으며 문과가 적성이 맞는 그에게 이과반을 강요했다.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시절이라 초등시절부터 늘 과외공부와 산더미 같은 숙제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지금 학생들의 상황도 그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세상은 변하지 않고 시간만 흐른 듯하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청춘을 보내면서 누구나 다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나 또한 무언가 의식이 깨어나던 스물부터 서른까지가 가장 괴로웠다. 그러나 아픔이 없으면 성숙도 꿈꿀 수 없기에 지금은 머리가 어지럽던 그 시절의 아파했던 기억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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