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기한테 정말 중요한 게 잘 놀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놀아준다라, 놀아주는 차원이나 범위나 방식의 면에서 적확하게 떨어지는 것이 없이 그저 감이거나 소문이거나 문장의 수준에 머무는 것들이 많다. 그러니 결국엔 내가 생각하는 차원에서 놀아주는 것이 전부다. (이럴 때, 감과 소문과 문장-책-에서 거리가 먼 나는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니 내 주관으로 놀면 된다.)

 

 소득공제 때문에 아내와 슬뫼와 내가 학교로 총출동했다. 아내는 이것저것 소득공제 관련 업무를 내 자리에서 보고, 나는 슬뫼와 학교 운동장이며, 잔디밭이며, 복도며, 도서관을 오가며 잘 놀았다. 아기가 노는 장면을 잘 관찰해보면, 아기의 놀이는 인형이나 로봇, 자동차 같은 장난감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공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기 스스로 공간을 재창조하고, 재배열하며, 지배할 수 있을 때, 놀이는 다양하게 변주되고 창의적이며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아파트 거실에서의 놀이와 산이나 운동장에서의 놀이를 잘 비교해보면 관찰이 쉽게 된다.

 

 슬뫼와 집 안에서 놀아보면, 공간의 창조는 별로 없다. 거실에 배치된 그 공간이 슬뫼가 자각하는 공간의 수준이며, 결국 그 공간 안에 배치되거나 나열된 놀이감을 중심으로 아기의 놀이는 배치된다. 그러니 엄마는 자꾸만 아기의 장난감을 늘려가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곧 한계에 부닥치게 되며 그럴 수록 하나둘 장난감만 늘어갈 뿐이다.

 

 그런데 슬뫼를 데리고 운동장이에 놀러 나가보면, 공간 모두가 놀잇감이 됨을 알 수 있었다. 흙, 거기에 파묻혀 있는 막대기, 돌, 그저 굴러다니는 바람빠진 농구공, 그냥 뛸 수 있는 공간. 그것들을 이래저래 엮고 얽어서 놀잇감으로 만들 줄 알았다. 내가 이걸 처음 발견한 것은 교대 앞에 있는 `책과 아이들`이라는 도서관겸 서점 마당에서였는데, 슬뫼는 어리숙한 걸음으로 숲길-이라고 해봐야, 내 걸음으로 6,7걸음이면 통과하는 곳이다-을 걷고 거기서 놀잇감을 만들며, 그 놀이에 집중하고, 또 시큰둥했다가 다른 놀이를 금세 만들었다. 바위에서 뛰어내리기, 흙만지기, 나무 만지기, 엎어졌다 일어나기, 나무 뒤에 숨기, 나무가지고 장난치기 등, 공간에 그냐 있는 것들로 온갖 놀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며 나는 좀 놀랐다.

 

 꽤 전에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결국 거기서 하는 이야기도 자연은 아이의 상상력, 창조력을 길러낸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오늘 저녁을 오롯이 슬뫼와 단 둘이 보내며 먹거리를 챙겨서 먹이고 놀고, 씻기고, 이야기를 하며 잘 놀았다. 특히 슬뫼가 기차 놀이를 좋아해서 차를 여러대 붙여 놓고 노는데, 슬뫼가 `칙칙폭폭`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게 신기하고 놀라워서,

슬뫼야, 3월 봄이 오면 아빠랑 기차 타고 놀러갈까?

어디로 가지? 삼랑진 시장에도 들르고, 원동 매화도 보러 가자.

거기 갈 땐 슬뫼 좋아하는 도시락 싸가서 놀고 오면 좋겠다, 그치?

 

 

하니까, 슬뫼가 활짝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하나둘, 슬뫼와 보낼 봄과 여름이 내겐 그려지고 있다.

이 순간을 무작정 사랑하리. 이 길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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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귀 2012-01-3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샘이 댓글 확인이 늦었네.
슬뫼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
설은 벌써 지났지만, 아직 보름이 지나지 않았지?
옛날엔 설 분위기가 보름까지 이어졌대.
그러니 지금 설 인사 해도 늦이 않은 거야~ㅋ

꿀이도, 올 한 해 행복하고 거창한 일들이 많길 바라.
물론 지내다 보면 힘든 굽이도 만날 테지만,
꿀이는 잘 이겨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