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에 발을 디디고도 산을 몇번 오르지 않은 것 같다. 내 생활의 리듬에 맞춰, 혹은 산에 가기 귀찮다는 까닭에 (6시 30분까지 범내골에 가려면,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수정하며-가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를 가는 걸 만드는 것 같은- 어영부영, 대충대충, 내 마음이 생겨나는 때에 따라, `저 산에 갑니다.` 이렇게 글 올리고 따라나섰지. 대장님이나 외생 아저씨, 원종이 형, 승진이, 보현 선배님(언젠가 꼭 `형님` 이렇게 불러 보고 싶은... 특히, 이번 집시 여행에서 `공동체` 이야기는 나에게 공감이 큰 내용이었으니까)은 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가끔, 생각날 때, 산을 찾는 것 같아,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따라나서도 되는가?`하는 의구심같은 게 자꾸 일었다. 그래도 외생 아저씨의 `언제든 우리는 늘 이 자리를 지킨다.`는 말이 위안이 되어 그냥 따라나서지만...

 

 벌써 지난 해가 되어 버렸지만, 지난 집시 여행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 속에서 산행을 기다리고 기대했던 것 같다. 이유같은 것은 묻지 마시라. 그침과 거침이 없는 발걸음. 살면서 당연한 그것들을 놓치고 사는 순간들이 무척 많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이런 저런 조직과, 이런 저런 삶 속에 툭 하고 나를 놓치고 있다는 자각. 그 툭 하는 소리의 질감이 느껴질 때, 내 자리는 대체 어디지? 하는 막연함, 외로움, 쓸쓸함, 고독감 같은 것. 그래, 나는 지난 한 해, 그 외로움이 내게 큰 과제였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속에서의 일어나는 그 엄청난 힘들을 상실한 난, 무척 외로웠으니까. 학교에 있으니까,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 쓸쓸함과 나의 무력감은 참 괴로웠으니까.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사람 - 이렇게 말하기에는 좀 가벼운 느낌이 든다. `분`이라도 쓰기도 그렇고.- 이 있었다는 것. 슬뫼와 아내와 같은 학년을 담당했던 국어과 선생님들, 그리고 전교조 선생님들. 결국, 삶의 틀에서 온 문제를 역시나 삶의 틀에서 위로받고 있었던 거다. 더 나가면,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거겠지. 그러니 나는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고 싶다는 욕심이 이는 것이고.(나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 같은 건 부려본 적 없는데, 좋은 사람을 많이 알아두고 싶은 욕심은 있다. 참 이기적이다.) 그래서 파르티잔 산악회 사람들과 보다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일 수도...(그런데, 여기서 확인되는 나의 성격 문제. 나는 결코 사람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형이면 형, 동생이면 야, 동갑이면 누구야, 이렇게 부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나는 그게 힘들다. 이제 겨우, 원종이 형, 대현아, 승진아... 이러고 있다. - 이렇게까지 쓰고 보니, 나는 호칭에 꽤 신경을 쓰는 사람이군 )

 

 이야기가 좀 딴 데로 샜다. 처음 쓰는 글이니까 다들 용서하시라!!

 

 결국, 사람이 좋아서,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 산을 찾는다는 이야기인 셈인데. 또 누구는 나에게 보태길, `수행하는 사람은 원래 산을 오릅니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엉이 바위로 올랐지예.`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말뜻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수행하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그래, 오르면서 무언가 곱씹고 되돌아보고 - 혹은 지금 순간, 왜 이리 힘드노 하는 그 모든 것들이 - 하는 것들이 수행의 자세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나는 산을 오르면서, 파르티잔을 통해서 삶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감사하게)

 

 첫 산행으로 신불산이 떴다. 집에서도 가깝고, 장인 어르신의 고향 근처라 몇번 그 언저리까지는 갔던 기억이 났다. 신불산 자연휴양림에서도 1박을 했었지. 장인 어르신은 소싯적 슬리퍼를 신고 간월산을 올랐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 듣고, `산이 좀 쉬운가.`이런 생각했었고. 간월산 옆에 신불산이니, `뭐, 어렵지는 않겠네.`하는 생각을 했다.(사실, 내가 좀 엄살을 떨어도, 어렵다고 느껴진 산은 없었다. 물론 순간 순간 힘든 시간이 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오르지 못할 산이 어데 있을까 싶다. `외생 아저씨 미안요~~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이른 시각, 등억 온천지구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좀 많이 가파르고(대장님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 주목 선배님은 완전 공감하실 듯~) 돌이 많아서 불편하고, 숨이 가빠오기 했지만, 확 땅겨오는 허벅지 근육의 탱탱함과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통쾌했다.(내 몸이 그걸 견디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희열같은 것) 그리고 내다 보이는 풍경의 시원함은 겨울의 찬바람 물럿거라 그거 아닌가.

 

 2시간쯤 올랐나, 신불산 정상에 섰다. 저기 간월산이 보이고, 반대쪽에 영축산이 보인다.(사실, 나는 통도사에 여러번 가면서, 저 뒷산-영축산- 참 좋네, 오르면 좋겠다. 이런 생각 많이 했다.) 저 영축산에 오르는 꿈을 몇 번 꿨지.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엔 여기서 하산이란다. 하지만 신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 능선의 이어짐은 한이 없다. 멀어질 수록 점점 옅어지는 게 한 폭의 수묵화 같다.(이쯤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수묵화가 우리 풍경을 나타내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능선을 영남의 알프스라지. 산악회에서 5월 중에 알프스 종주를 계획한다는데, 마음이 확 쏠린다.(그런데 또 이쯤에서 충돌. 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어쩌지?)

 

 신불산 정상과 간월재 중간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했다. 하산길은 오르는 길에 비하면, 지루했고, 근육의 땡김이 전혀 없었으며, 솔직히 말하면 `무척 좋았다` 특히나 대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온 게 배운 게 많았다.(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산을 오르는 순간은 수행의 순간이 맞는 것 같다. 내려오면서는 이런 저런 반성도 하게 되니까.)

 

 파르티잔을 안 지도 4년째 접어드는 것 같다. 1,2년 때에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4년째 되면서도 정식 기수가 되지 못한 건, 좀 그렇다.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올 한 해, 또 삶이 어떤 굽이를 만날 지 장담은 못하지만, 산에 자주 오를 수 있길, 하는 바람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