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에 실을 글을 이제야 다 썼다.

한 며칠 머리에 둥둥둥 떠다니던 말들을

끄집어 내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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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무엇으로 크나


김은규



 슬뫼가 21개월을 살았다. 나이로는 세 살. 처음엔 잘 몰랐는데,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엄마`만 할 줄 알던 아기가 `엄마, 이거 이거`를 하고, 이제는 `아빠`를 한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이거 이거`를 외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난 별달리 한 게 없는데, 슬뫼가 이렇게나 커서 놀랍기도 하고, 아내한테는 미안하기도 하다.


품안의 열 달, 가슴 졸인 시간들


 아내의 임신을 2009년 5월 해인사 여행 후에 알게 됐다. 무척 긴장한 얼굴(인 걸로 기억하는데)로 아내가 `나, 임신인 것 같아.`말했을 때, 나는 사실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사는 것도 좀 벅찼던 때라 새로운 생명의 생성은 감이 좀 멀었다. 그 뒤로 산부인과에 가고 확인을 하고, 몇 번 더 병원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의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예요. 보다 정밀한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하는 말은 임신 소식보다 훨씬 큰 무게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게 임신 5,6개월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로 아내는 눈물바람이 되었다. 계획한 육아와 그 이후의 생활이 모두 무너지는 일이었으니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달짱을 낳을 거예요?`고 묻는데, 그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물음이었다. 몇 개월 품고 있던 생명도 자식이라고 `지우자.`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한테 내려온 생명인데, 우리가 키워야지.������하는 말로 아내를 다독였다.(그러면서도 솔직히 내 마음은 좀 복잡한 구석이 있었다. 아내와 나의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솔직히 두려웠던 거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결단을 했다. 보다 정밀한 검사를 거부하고(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는 출산을 결심했으니까, 정밀 검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태교에 더 마음을 썼다. 그리고 병원을 바꿨다. 새로 찾은 병원에서는 입체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지금껏 내가 들어본 말 가운데 가장 고마운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지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때 아내의 태교는 좀 특별한 구석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반야심경>을 한자로 공책 몇 권이 되도록 베껴 적었다. 몇 번 하다 보니 그게 저절로 외워져서 슥슥슥 적어 내려가는 게 나는 신기했다. 남편이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음이 심란할 때 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토회 법회나 요가, 명상을 꾸준히 했고, 풍욕을 꾸준히 하면서 달짱을 둘러싼 우주인 양수를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원래 육식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임신 기간 동안엔 보다 철저히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짰다. 아내의 모든 관심은 달짱에게로 집중되어 있었고, 남편인 나는 또 다른 세상에서 혼자 지냈던 것 같다.(아,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이 많다. 지극정성이었던 아내에 비하면, 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아내 애만 채웠다.)

 출산의 방식도 자연주의에 따르기로 했다. 우리 혼례 길눈이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께서 미셸 오당의 <농부와 산과의사>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셨는데, 아내는 그걸 읽고 보다 용기를 낸듯했다. 어쨌든 우리는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조산원에서 3.8킬로의 달짱을 만날 수 있었다.(사실 나는 나의 고향집 안방에서 태어났다. 소가 제 살던 마구간에서 새끼를 낳듯, 우리 엄마는 안방에서 세 자식을 모두 별 탈 없이 낳으셨다. 병원에서 인류를 낳기 시작한 역사가 이제 갓 100년 될까?)


나의 로망, 육아 휴직하는 아빠


 아내에게는 출산, 육아와 관련해서 강고한 원칙같은 게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36개월 부모 품에서 키우기`다. 육아 전문가나 법륜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데, 아내도 이런 원칙을 삶에서 실현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양가 어르신들께서 걱정시지만, 육아에서 절대 강자는 엄마가 아닌가.

 아내는 이런 원칙하에 2년째 육아 휴직을 하고 있다. 슬뫼와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경이로운 시간이란다. 물론 때때로 힘든 순간이 없지 않지만, 품안의 자식이 자식이라고,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아내는 아는 눈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길러 제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읽힌다.(참고로 아내는 슬뫼에게 다짐하듯 곧잘 이런 말을 한다. ������딱 36개월까지야.������그때까지 이 열정적인 육아를 이어가겠다는 거다. 그 다음은 아기의 몫이라고) 그러니 저렇게 열정적으로 육아에 임하지. 지난 2년 동안 천기저귀(태어나고 한동안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지금은 팬티 기저귀를 사용한다.) 모유수유, 건강한 먹거리, 엄마 교육, 온갖 감각 놀이 등 아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냈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의 자리는 뭐였나? 싶을 때가 많다. 아빠는 아빠이긴 한데, 내가 한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딱히 보이지 않는다. 표현은 쉽지 않지만, 그래서 아내한테 특히 슬뫼한테 미안하다.(근데, 그럴 수도 있다. 나도 평균만큼은 했지 싶은데, 아내가 저리 열정적이니 내가 상대적으로 초라할 수도 있다는 말씀~)

 그런 것 다 제쳐 놓고, 나에게도 육아 원칙이 있다. 이건 총각 시절부터 꼭 마음에 품었던 건데, `아빠도 육아휴직하기`다. 이것을 선택한 것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내 최대의 상실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 육아 휴직하는 남성의 수가 1,000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봤다. 나는 그 기사가 믿기지 않았다. `에개, 고작 1,000명이야?` 내가 0을 하나 빼먹지 않았나 싶어 다시 봤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육아 휴직을 맘 편히 선택할 수 있었던 만큼 다른 사람도 그리 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육아 휴직을 한 그 천명의 남성도 아마 나같은 공무원이거나 공기업의 직원일 가능성이 높겠다. 아직 육아하면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사회가 아닌가. 법으로 남성의 육아 휴직을 보장하고 있지만, 직장에서는 묘한 눈치주기의 분위기는 엄존하는 모양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나에게 복이자 기회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읽었다. 문은희 선생님의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는 꽤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엄마의 육아 태도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의 육아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고 읽었다. 특히, 부모의 어릴 적 상처나 감정이 그릇된 육아의 시작일 수 있다는 지적은 내게 제법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내는 명상과 요가에 일가견이 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실력 정도는 된다. 아내의 명상과 요가는 신체를 유연하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정신적 삶을 살 수 있는 통로 정도라고 보는 게 맞겠다. 이런 점에서도 아내는 나보다 한 수 위, 맞다. 아내의 정신 수양은 사실 육아에 무척 도움이 되고 있다. 명상과 수련 활동을 통해 어릴 적 상처를 직면하는 용기를 아내는 지녔다.

 나도 저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릴 적 상처를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1주일간 명상을 하는 연수에 등록을 했다. 이것은 육아뿐만 아니라 내 삶을 온전히 살고 싶은 욕구가 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학기의 짧은 육아 휴직이지만, 슬뫼와의 교감을 보다 깊고 넓게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당장 3월부터 휴직에 들어간다. 지금은 방학이니까 실질적인 육아는 시작된 셈이다.

 막상 육아 휴직을 하고 슬뫼와 하루를 보내다 보면, 기대와 달리 실망하고 힘든 순간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순간에 집중하고, 슬뫼와 함께 하는 이 찰나를 사랑해야지.(이런 결심도 무너질 수 있음을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다짐해둬야 오래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으로 지금까지는 무너졌던 한 축, 아빠의 자리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다. 아기는 엄마, 아빠 모두의 사랑을 먹고 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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