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끝났다. 말이 말의 값을 다하지 못하는 시절. 그러니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지만, 과연 그 값을 하는지는 자신있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도 허위라면 허위일까. 여튼, 말값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어젯밤 잠을 좀 설쳤다. 내가 수능을 앞둔 밤처럼, 꼭 그랬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잠을 깨는. 아무래도 내가 좀 긴장해 있었나 보다. 나는 고 3 언어 영역 전담 수업을 했고, 게다 이번 수험생들이 고 1, 2학년일 때, 나는 국어와 문학 수업 등을 맡아 해왔다. 그러니 내 수업이 이 수험생들의 시험 점수로 변환되어 나타내질 판이었으니 마음이 그리 썩 편하지는 않았을 게다.
언어영역 감독을 하면서 시험 문제를 세심히는 아니지만 대강은 살펴봤다. 그리고 수험생들의 얼굴을 봤다.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와, 이런 문제로 수학능력을 과연 평가할 수 있나? 객관식 선다형으로 몇 점 더 받았다고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갈 힘이 더 있다는 건가?` 몰라, 나는 거기에 썩 긍정적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어차피 지금 대한민국의 시험이란 것은 수학능력을 평가한다기보다 등수와 등급을 정하는 것이니 엄밀히 말해서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쯤에서 고3 선생으로 지낸 내 삶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는 것. 문제풀이 문제풀이 문제풀이. 여기서 한치도 더 나아간 게 없다. 이래놓고 선생이라... 뭐 이걸 원한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 거라 위안할 수 있지만, 선생의 노릇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쉽지 않다. 순간 순간 화가 나고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 거대한 벽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내 스스로의 길을 찾지 못했으니, 나 스스로에게 채찍을 돌려야 할 일인 것같다.
이런 생각 끝에 이 시가 떠올랐다.
책을 퍼다 버리다
수능 끝난 다음날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트럭이 왔다
3학년 교실은 쓰레기장이다
아이들은 책을 질질 끌고 나온다
두엄더미 거름 삽으로 퍼내듯이
아이들은 책을 폭폭 상자째 퍼다 버린다
일 년 아니 삼 년 내내 생을 걸고
풀고 또 풀던 교과서 문제집들
끼고 다니고 베고 자며 눈물 콧물 묻어 있는
책들을 하루아침에 미련 없이 던져버린다
그동안 금과옥조 성전처럼 받들었으나
저 책들은 사실 시시한 군소리였다
산더미 같은 책더미 트럭은 금방 넘친다
내 한숨과 꿈이 서린 소중한 책들
까맣게 밑줄 긋고 베껴 쓰며 청춘을 바쳤던
가보처럼 물려주고 싶은 책에 대한 얘기는
까마득한 신화 또는 썰렁한 개그다
시험 끝나면 책은 보물은커녕 오물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으냐고?
공자님은 모른다
배우고 매일 문제 풀면 정말 신물이 난다는 걸
강 건넌 뒤 저리도 미련 없이 뗏목을 던져버리니
장자가 보면 좋아하시겠다
그런데 웬 뗏목이 저토록 많단 말인가
저 뗏목들을 밤낮으로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니
아이들이 왝왝 토해내고 싶기도 하겠다
갈수록 숲이 성글고 공기 가빠지는 이유도
수능 끝난 다음날 고3 교실에 와보면 알 것이다
- 책을 퍼다 버리다, 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실천문학사, 2006년
사람의 인생 한 살이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선생으로서의 내 한 마디는 정말이지 시시한 군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성전처럼 떠받들던 교과서도 군소리에 지나지 않겠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양한데, 그것을 한 가지 잣대로 서술한다? 가르친다? 에고고 불쌍한 일이다. 이 불쌍한 일을 아이들은 성전으로 받들었다니, 이거 이거 선생 노릇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없는 세상 싸움이 없는 세상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욕심이 없는 세상 아픔이 없는 세상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난 살고 싶어
너와 나 손을 잡고 사랑을 노래하는 세상
난 살고 싶어
모두가 하나 되어 행복을 노래하는 세상
살고 싶어
경쟁이 없는 세상 차별이 없는 세상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승리가 없는 세상 패배도 없는 세상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 `그곳은 어디에`, 한태주 노래, 첫 창작집 <첫비행>
그래, 승리도 패배도 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
점수 몇 점으로 삶이 결정되지 않는 세상.
과연 불가능할까?
근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시험치고 점수매기고 등급매기고 대학 정해진다고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거!
자, 이제 새로운 꿈을 꾸며 노래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만 이런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이미 조향미 선생님은 시로써 이 안타까움을 노래하셨고, 최근에 한태주라는 젊은 음악인은 이렇게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