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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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반성
   

  어줍잖은 선생 노릇 10년이 되어 간다. 대학 4년의 배움이 얕아서 가르침 또한 깊지 못하다. 대학 4년을 돌아보면, 한 번의 연애와 소략한 독서, 그리고 잠깐의 분노로 대강 정리될 듯하다. 80년대 학번처럼 사회 운동론이나 마르크스주의, 사회 구성체론 등 붉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잠깐 잠깐의 찌라시(!)로 별 내용없는 분노만 일었다 잠겼다 그랬다.

 교사가 되고 소위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발령받았다. 학생은 학생대로 피곤한 삶이었고, 교사는 교사대로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니 인정이란 게 없지 않아서 조금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눈물 쏟는 녀석이 있기도 했다. 그것으로 교사의 보람을 찾아 갔다. 그러면서 그 녀석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 대학 때 밀물처럼 밀려왔다 때맞춰 빠져나가기만 했던 분노와 안타까움이 바로 내 곁에 와 있었다. 세상이 사람을 변두리로 몰아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변두리로 내모는 세상을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가난한 사람도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 좀 멀어 보였다.

 그리고 어느 단체에 가입을 했다. 가난하고 힘든 아이들에게 웃음짓고 같이 아파하던 선생님들이 그 단체에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교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가난이나 그 어떤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시당초 그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힘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뭔가 될 것 같기도 하다.`는 희망이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지리멸렬했다. 최근엔 후자에 가까워 나 스스로 좀 낭패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낭패감에서 어째 벗어날까 싶어 도서실에서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빌렸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혁명가, 불꽃은 같은 삶을 살다 간 김산. 그를 통해 이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비춰보고 이 낭패감에서 벗어날 정도만 바랐지, 세상을 바꿀 혁명적 힘같은 것은 아예 꿈꾸지 않았다. 이미 김산은 사람을 넘어선 사람이 아닌가. 어찌 그처럼 간난고초를 이겨내며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나는 적당히 분노하고 적당히 행동하며 언제고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필부일 뿐.

 그런데 김산의 삶을 따라가면서 내가 부끄러워졌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희망으로 교사 소모임을 하고, 투쟁 현장에도 참가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신심같은 게 있기는 했을까. 신심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간절함같은 게 있었나.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안타까워서 분노했고, 적당히 둘러치며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산의 삶이 가닿기 어려운 삶이란 걸 인정하면서, 적어도 무언가를 하겠다고 일을 잡았으면 치열한 의지같은 것은 있어야 하지 않나.

백절불굴의 삶

 김산은 1919년 3.1 운동에 동참하면서 조선의 독립 가능성을 희망했다가 곧 좌절하고 만다. 비폭력 운동만으로는 일본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김산은 곧바로 일본을 거쳐 만주로 떠난다. 거기서 안창호 선생을 만나 약간의 도움을 받는다. 김산은 안창호 선생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곧이어 상하이 임시정부 주변(1920년대 임시 정부는 보수적 성향의 민족주의와 급진주의로 양분되어 있었던 듯하다.)에서 활동하던 젊은 항일 `급진주의자`들과도 접촉한다. 그러면서 무정부주의로 기울어져 무정부주의자가 되겠다는 서약을 했다. 드디어 1921~1922년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마르크스 레닌주의자가 되었고, 중국 공산당원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김산은 중국공산당원으로서 1927년 광둥 코뮌과 하이루펑 소비에트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사실 광둥 코뮌과 하이루펑 소비에트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리랑>은 김산의 삶을 통해 그것의 실패를 생생하게 묘사해주고 있다. 김산은 이것의 실패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홍콩을 거쳐 어렵사리 되살아오게 된다. 하지만 김산은 코뮌과 소비에트의 실패로 건강은 파괴되었지만, 정신은 더욱 튼튼해졌다고 술회한다. 그러니 그 후에 반동세력의 요새였던 베이징에서 지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30년에 베이징 경찰에 체포, 일본으로 넘겨진다. 그렇지만 그가 중국공산당원이라는 증거가 불분명해서 석방된다. 1933년에 다시 체포, 6번의 물고문 끝에 석방되기도 한다. 석방 후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와 다시 공산당 활동을 하게 되고, 1937년 무렵 헬렌 스노우를 만나 자신의 삶을 술회하게 된 거였다. 그 뒤에 김산의 소식을 스노우는 접하지 못했고, 1938년에 부당하게 처형되었다는 소식에 몹시 충격을 받는다. 죄명은 `트로츠키주의자`, `일본 스파이`라는 것이었다.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당원 자격을 회복하면서 그의 죽음이 억울했음을 인정한다.

 
김산의 혁명가적 사상

 김산의 삶을 몇 문장으로 정리했지만, 그의 사상과 의지는 이것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다. 일제의 폭압에 헐벗고 떠도는 조선 백성을 위해,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간 사람이 김산이다. 일본 순사의 6번에 걸친 물고문과 폭행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땅으로 다시 건너가 혁명을 위해 몸바쳤던, 사람을 넘어선 사람이 김산이었다. 실패에서 좌절을 읽지 않고, 거기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초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김산은 스스로, 이렇게 술회하기도 했다. 

`다년간에 걸친 힘든 혁명적 경험으로 무장되고 장차 올바른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춘 하나의 성숙한 인간이었다. 나 자신의 문제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 판단은 균형이 잡히고 건전하게 되었다. 감정에 흐르거나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정신으로 육체적으로나 투쟁의 확고한 배경을 갖는 실제적이고 현명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중략) 일단 내 지도방식이 올바르다고 느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따르라고 명령을 내린다. 확신을 갖게 될 때까지는 마음 속에서 결정하기를 거부한다.` - 402쪽

 이 인식이 거짓되거나 허언이 아님은 이미 김산의 삶이 다 말해주고 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한 자기 단련을 통해 형성된 자기 신뢰, 엄정한 상황 인식 능력, 단호함, 신중함, 주도면밀함 등이 읽힌다. 혁명가로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라면 곰곰이 되새겨보아야 할 덕목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김산의 혁명가적 자질로서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월한 권력에 대항하여 개인적으로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힘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대등한 힘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힘을 동원할 수 없다면 행동을 늦추어야 한다. 모험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중략) 다수의 추종자를 얻기 전에는 지도할 권리가 전혀 없다. 자기 시대를 앞서 있다는 것은 선전 작업과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에 불과할 뿐 지도할 자격은 되지 못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위대한 민주주의적 대중지도자는 대중을 쫓아가서 앞으로 밀 뿐 대중을 밧줄로 잡아끌지는 않는다.` - 466쪽


제목 아리랑
   

 이 책의 제목이 <아리랑>인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노래여서이기도 하지만, 김산을 김산이게 한 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의 삶을 아파하고, 혁명가적 삶을 살게 한 그 아픈 힘이 여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과 사람을 사랑한 그 웅숭깊은 인간애가 김산의 혁명가적 면모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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