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학을 하고 지금까지 어떤 정신으로 지냈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지냈다는 말. 근데 돌아보면 딱히 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다. 살면서 완성된 무언가를 내놓아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뭐 했지?` 물음에 멍해질 때, 허망해지려한다. 수업을 하긴 했는데, 대체 내가 무얼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또 무얼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그저 기계적으로 문제만 푼 것 같다. `3학년이니까`하는 스스로의 위로 혹은 변명같은 것으로 면죄가 될 것 같지 않다. 거기다 더해 지금 3학년 아이들의 언어 성적이 해가 갈수록 곤두박칠쳤으니, 그 많은 국어 수업 시간이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의미가 있긴 했나 모르겠다.

 몇 번 얼굴을 봐서 눈인사 정도 하고 지내던 한 선생님이 우울증으로 병휴직을 내셨다는 소식 들었다. 나보다 젊고 학생들과 잘 지내던 유쾌 발랄한 선생님이라 좀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간에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어째 어째 학교 생활을 버텨오셨다니. 어디선가 그 선생님 글을 읽었다. 10년 가까운 교직 생활동안 학교가 한 치도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더욱 사람을 못 살게 굴었다, 는 내용이었다. 그래, 어쩌면 학교가 교사나 학생을 병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산대 유아교육과 어느 교수님은 전에 이렇게 물으셨다. `선생님, 선생님들 하시는 일이 선업(善業)이라고 생각하시죠? 착각하지 마세요. 애들 죽이는 악업(惡業)이예요.` 그 말씀이 좀 과하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학교에서 성장하고 행복해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생각에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어쩌면 본질적 문제를 짚으셨는지 모른다.

 매주 금요일 저녁, 초량에 있는 민주시민교육원에서 연수 하나를 받고 있다. `포스트 후쿠시마와 교육` 언론에서는 후쿠시마가 사라졌지만, 그 문제는 지금도(어쩌면 영원히..ㅠㅠ)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심 집회가 열리고 진보적 일간지에 연일 글이 실리지만, 우리 나라 진보 언론은 인력의 부족 탓인지, 자금력의 문제인지 일절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녹색평론 편집인인 김종철 교수님이 원자력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한겨레에 보내도 보도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시며, 우리 나라 언론도 원전 마피아에 포위되어 있다고 주장하셨다. 일례로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한다는 책을 1면 광고로 큼지막하게 실어준다는 것.

 독일은 원전 제로를 실현하기로 국민적, 정치적 합의를 본 상태란다. 핀란드도 건설하던 원전을 포기했다. 애초 올라온 예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건설 비용에 정치권도 손을 든 모양이다. 일본도 원전 제로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만은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니, 미래가 불안하다.

 <체르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읽고 있다. 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취 기록했다. 특히 충격적인 건, 한 여인의 이야기. 이 여인은 소방관의 아내. 이 둘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였고. 남편이 원자력 사고로 인한 화재 진압에 투입된다. 작전 수행 후 곧바로 모스크바 원자력 병원으로 후송되고 아내가 의사들에게 사정사정 해서 남편 병간호하게 된다. 의사들은 ``저건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방사능 덩어리일 뿐입니다.`` 하고 만류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관은 완전 밀폐되고, 거기다 1.5M 두께의 콘크리트 공간 안에 매장된다.(지금도 이 묘지 안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 한단다.) 그리고, 이 여인은 얼마 후 딸 아이를 출산하는데, 이 아이는 몇 시간 만에 죽는다. 갓난 애기가 간경화와 백혈병이라니...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라 예상됐던 여인은 아직도 살아 있다. 왜 그럴까? 방사능 물질이 태아에게 다 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다. 원자력, 방사능의 성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란 생각 때문이다.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죽이는` 원자력 시대가 아닌가.

 많은 전문가들이 원자력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나라로 프랑스와 우리 나라를 꼽고 있다. 그런데 김종철 교수의 생각은 단연코 우리 나라. 그것도 우리와 가까운 고리를 꼽았다. 이유는 두 가지.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시설이 후쿠시마 거랑 똑같은 거란다. 이미 가동 연한을 넘겼고, 거기다 재가동에 들어갔으니 위험이 높아진 거다. 그리고 프랑스는 원자력 안전 기술자가 무척 많은데, 우리 나라는 원자력 안전을 전공한 전공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 짓기만 지었지 그것의 안전을 관리할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자력을 좋은 에너지라고 홍보하고 있으니, 미래가 두렵다.

 대안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모든 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 하나의 처방, 혹은 여러 가지의 처방이 내려진다 해도 어쩌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미 신의 저주에 발목이 잡힌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1986년에 `지옥의 문이 열렸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해도 계속해서 이 속도로, 이 삶의 방식대로 살아서 되는 일일까? 우리 사회가 이 모습대로 100년이 지속된다면(앞으로 꾸준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거기서 삶의 희망을 말하거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야 길게 50년 정도 살다 가면 그만이지만, 그 뒤에 남겨질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뭐, 인류의 문제가 지금만 존재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다 있어왔고, 그래도 어째 여기까지 버티고 온 걸 보면, 이 문제도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보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지옥의 모습을 보면, 이 걱정 잠재우기가 쉽지 않다.

* 에휴, 어쩌다보니 이 일기장을 2주 가까이 손에 쥐고 있었다.
  일기는 이미 쓴지 오래. 이제 백혜원 샘한테로 달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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