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면서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 간혹 있다. 나는 주로 마음이 부대끼면서 무언가 일을 마쳤을 때가 그 순간이다. 1학기 때에는 한창훈 선생님 초청 강연회를 마쳤을 때가 그랬고, 오늘은 아이들의 본격적인 수업이 끝나서 그랬다. 거의 1년 동안 문제 풀이만을 한 나의 수업이 무척 아쉽고, 이 상황을 나 스스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다시 나에게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 해도 별다른 수를 쓰기가 쉽지 않겠지만, 내 마음에 찌꺼기같은 걸로 가라앉는 이 정체불명의 것을 떨어내야할 것만 같았다. 

 나는 탑을 보면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감은사지탑, 무장사지탑, 창림사지탑, 그리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용장사지 3층 석탑이 그렇다. 그래서였다. 이번 정리는 남산에 우뚝 솟은 용장사지 석탑으로 하리라. 실제로 정리가 되든 아니든, 그 느낌이 내게는 필요한 거였다. 

 1,2학년은 소풍을 떠나고, 3학년은 사설모의고사를 치르는 날. 나는 그냥 연가를 냈다. 그리고 오후 늦게 경주로 출발. 후훗~ㅋ

  

  늦은 점심을 삼릉 입구에서 먹고 도열하듯 늘어선 소나무 숲을 지나면 위의 사진을 만나게 된다. <냉골 여래 좌상>다. 부근에 묻혔던 것을 우연히 발굴한 거란다. 왼쪽 어깨의 가사끈과 허리에 맨 군삼끈이 매듭지어진 모습인데, 어떻게 돌에다 저런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놀랍다. 정말이지 매듭의 한 끝을 잡고 스스륵 잡아당기면 매듭이 부드럽게 풀릴 것만 같다. 

 잠깐 쉬었다 금오산 정상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아래의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다.  

 

 <선각 아미타불>이다. 지금은 <선각육존불>이라고 이름붙여져 있는데, 저 옆으로 삼존불이 더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선각 아미타 삼존불>이 두 세트있다고 보면 된다. 원래 석가삼존은 여래가 앉으시고 협시보살이 서 계신 데 비해 이곳에서는 여래가 서계시고 협시보살이 앉아 계신다. 협시보살이 여래에게 연꽃을 바치는 모양인데, 그 새김이 아주 섬세하다.  

 부처를 보는 것도 좋지만, 부처가 바라보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저 삼존불 위에 올라봤다. 저 아래로 펼쳐진 경주 들판은 늦가을답게 노랗게 익어 있었다. 부처님도 보시기에 참 좋으시겠다. 

 여기서 잠깐 숨을 돌리고 조금 가파른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주 독특한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독특하단 것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말씀. 너무 평범한 얼굴이어서 아주 독특한 부처님이 되어 버린 역설. <냉골 마애 석가여래상>이다. 

 

 몸은 선각으로 되어 있는 반면, 얼굴은 돋을새김을 해두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긴 암벽의 금을 대좌로 삼고 앉으신 모습이 무척 위엄 있어 보인다. 역시나 이 부처님 위에 올라가서 사바세계를 내려보면 경관이 아주 멋지다. 땀을 잠시 식히고 곧바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랐다. 한 20여분 오르면 능선을 만나게 되고 바둑바위위에 설 수 있다. 거기서는 경주 시내가 굽어보이고 맞은 편에 선도산, 무열왕릉, 오른편으로 계림, 반월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금오산 정상까지는 능선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이 지겹지가 않다. 능선 오른편으로 트인 시원한 벌판은 보는 재미가 있다. 그 능선길에서 해지는 장관을 찍었다. 

 

 이쯤되면 약간 가파르게 오른 길도 다 용서된다. 

 금오산 정상을 찍고 짧은 임도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내가 경주에서 최고의 장소로 치는 용장사지 3층 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 이르기 10분 전부터 내 가슴은 무척 설렌다.  

 

 <용장사지 3층 석탑>이다. 기단이 둘인 형식인데, 하층 기단부는 금오산 전체가 해당된다. 그러니까 탑 높이만 해도 무려 400m가 넘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탑이 앉은 자리가 무척 좋다는 거다. 조금만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경주 벌이 훠~~~언하게 펼쳐진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서 아래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쯤되면 정리가 뭐고 없다. 생각이 있을 수가 없다. 그저 고요하고 평안하다. 

 용장사는 김시습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분이 지으신 책 이름이 <금오신화>라고. 이 탑 아래 조금만 더 내려가면 용장사지 금당터가 남아 있지만, 그 형색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알아 볼 수가 없다. 

 이 탑만이 용장골에서 이름난 게 아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용장사 마애 석가여래 좌상>이 남아 있다. 이거 이거 보통 아름다운 게 아니다.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어깨선은 매끄럽기만 하다. 두 볼은 아주 복스러운 얼굴이라 보는 이 역시 복받을 것만 같다.  

 

  이 부처님을 끝으로 용장골로 내려왔다. 4시간여의 산행. 혼자였지만 그래서 더더욱 좋았던 것 같다.  

 석탑, 석불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오래된 것은 아프다.` 하지만 이건 싫지 않은 아픔이다. 마음을 더욱 호젓하게 하는 야릇함이 있다. 꼭 문태준의 시처럼... 

  이쯤되면 문태준의 시 한편으로 마무리. 

 빈집 1  

              문태준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 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발들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가락을 세워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한때 부리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지은 그 기억의 집 장대바람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오랜 후의 당신이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들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이 슨 내 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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