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정치 -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
권정우.하승우 지음 / 한티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 헌법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헌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헌법을 만들려는 시도를 나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치는 법적인 수단이나 규제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비공식적인 방법들, 숙청.테러.비밀경찰과 같은 수단을 통해 정국을 장악해 나갔다. 나치는 자신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여기는 순간 숙청을 시작했고 유대인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다. 그리고 상시적으로 비밀경찰은 적들을 만들어냈고, 그 적을 통해 내부의 단결을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헌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35쪽


이들은 살아 있지만 죽었고, 죽었지만 죽지 못한 사람들이다. 즉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허용되지 않은 자들이다. 수용소에서 인간은 죽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 절멸의 상태에 처한다. 왜냐하면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42쪽


대중들이 가지는 도피의 욕망은 "살도록 강요받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세계에 대한 그들이 내리는 일종의 평결"(<인간의 조건>, 352쪽)이라고 아렌트는 말했다. 대중들이 도피하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거나 현실감이 없거나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피만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들이 정치라는 행위, 즉 결과를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하고 토론하는 고유한 행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84쪽


아렌트는 "다원성은 같음과 다름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지닌다"(<인간의 조건>, 175쪽)고 말한다. 우선 인간은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게 될 그 어떤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존재라는 점에서 다르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또한 다원성은 인간이 공통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공통감각이 없다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과거와 미래의 인간들에 대한 이해 역시 가능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다원성은 말과 행위를 하는 동등한 인간들 속에서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93쪽


말과 행위를 기본 조건으로 하는 인간의 다원성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들어주고 반응해줄 수 있는 이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바로 이런 다원성에서 시작한다. 공적 영역은 "타인의 현존을 기반으로 자신의 차이성을 말과 행위로 드러내는 공간"(179쪽)이라고 말했다. 아렌트는 설득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며, 인간은 다른 어떤 수단이 아니라 말과 행위를 통해서만 정치적인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93쪽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 용서로 서로를 해방시켜줌으로써 인간은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 내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를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용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극히 인격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다. -95쪽


사랑보다는 존중이 용서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존중은 일정한 거리감을 가진다. 나는 그를 존중하지만 그와 일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존중받을 만한 자이기에 그를 인정할 수 있고 용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96쪽


반면 아렌트에게 약속은 자신을 지배하고 나아가 타인을 지배하는 데에만 의존하는 오래된 정치형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약속은 지배에 의존하지 않는다. 약속을 한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유롭다. 약속은 타인이 자신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이루어지는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아렌트는 약속을 "인간사의 예측불가능한 측면과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둔 채 단순히 수단일 뿐인 약속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이정표를, 예측가능한 섬을 불확실한 바다에 만들어 두는 것"(244쪽)이라고 말한다. -97쪽


아렌트는 자유=안전의 논리에서 다시 자유를 안전에서 분리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안전의 논리는 결국 공간을 분리하는 데 있다. ... 이렇게 타자와 만남의 장소가 상실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타자의 문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고, 안전은 결국 나 아닌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는 안전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단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상실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안전이 가로막고 있는 인간들 사이의 공간은 타자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유=안전의 논리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하며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논리였다. 결국 타자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묵인하는 것은 나의 자유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10쪽


소크라테서의 적들이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고 했던 주장은 매우 적절했다는 것이다. 다만 "'타락시킨다'는 의미를 잘 이해한다는 조건하에서 그러하다. 여기서 '타락시킨다'는 것은 기존의 의견들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전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을 가르친다는 것을 의미(<투사를 위한 철학>, 43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락시킨다는 것, 그것은 청년들에게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의견을 변화시키는 어떤 수단, 그리고 심지어 원칙의 문제가 중요시될 때 복종을 반란으로 대체하는 어떤 수단을 부여하는 것이다."(43-44쪽) 타락이라 비방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기성질서에 대한 거부, 반란을 내포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일 수 있다. -191쪽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고 자기 의견을 고집한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아렌트는 이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타자와 차이 없이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두 명 이상이 만나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일 뿐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204쪽


사실 1960년 4월항쟁의 불씨를 당겼던 행위자들은 대학생이 아니라 중고등학생과 시민이었다. 이승원의 <4.19혁명과 피해대중>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시위를 촉발시켰던 마산의 시위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13명이 사망했는데 중학교 재학생 2명, 중학교 졸업생 2명, 공장 직공 2명, 행상 1명, 고교 재학생 4명, 상인 1명으로 대학생은 한 명도 없다. 대학생은 사회를 바꾸겠다는 시민들의 열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드러난 뒤에야 시위에 동참했는데도, 마치 4월항쟁의 주역이 대학생인 것처럼 기록되었다. 기록에서 지워진 이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누군가가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결정에 참여하고 싶었을 사람들은 다시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밀려났다.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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