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이 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대중들에 대해 권력이 느끼는 공포의 동시성이 좀비의 공포에도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27쪽


인권의 정치성은 국가라는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연합의 구성적 원리라는 점, 그리고 정당과 같은 정치적 제도의 매개 없이도 직접 국가제도를 변혁하는 인민의 집단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의 원천적 권리이기도 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인권의 정치란 인권의 이념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가는 집합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들 사이의 교류와 연합을 의식적으로 인권의 이념을 통해 구성해 가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적 활동이자, 사회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 인권을 핵심적 원리가 되도록 만드는 운동이며, 인권의 이념에 따라 현실의 제도를 변혁해 가는 실천적 행동들이다. -63쪽


나는 오늘날 인권의 정치에 요구되는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권을 탈도덕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인권이라는 관념에 내재해 있는 전복성과 급진성, 불온성을 복원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68쪽


인간의 권리는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그 본질적 규정이 유지되는 이데아와 같은 권리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이라는 활동에 의해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경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중에 있는 권리'이며 하나의 원리로 환원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권리들의 다양체를 표시하는 이름이다. -106쪽


오늘날 인권에 대한 비판이 향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인권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현대 인권비판의 논의를 관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권이 말하는 그 인간이란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인권에 대한 비판적 사유의 역사에는 반복되고 있다. -122쪽


인간이 가지는 권리의 기원은 출생으로까지 소급되는데, 그 출생부터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곧 그가 국민이라는 사실, 그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태어난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근대적 정치질서가 인권선언과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인권이 바로 벌거벗은 삶을 포섭하기 위한 근대 정치의 장치 역할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141쪽


바디우에게 인권이란 "생명과 관련하여(살해와 처형의 공포), 몸과 관련하여(고문, 가혹 행위, 기아의 공포),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하여(여자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모욕과 공포) 공격받지 않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들이다. 즉 인권이란 "악이 아닌 것에의 권리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가 악의 제어인 만큼 인권은 윤리와 그 내포가 사실상 같다. 윤리와 인권은 권력의 정치적 장에서 이렇게 동일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권-윤리는 정확히 서구 자본주의 승리를 승인하는 하나의 철학적, 정치적 방식이다. -145쪽


무엇보다 정치는 치안에 의해 이루어진 공동체 내의 자리들과 기능의 위계적 분배를 뒤흔드는 행위로서 그것은 ㅁ모든 이의 평등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치안에 의해 자격 없는 자들로 분류된 이들, 능력이 모자란 자들로 규정된 이들도 자격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들과 평등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인 것이다. -160쪽

 

정치란 공동체의 질서 안에서 합의된 몫의 분배체제에 맞서 몫이 없는 자들, 자격 없는 자들이라고 여겨지던 이들이 그 체제의 경계 안으로 '부당하게' 침입하는 불화의 행위이다. -161쪽


"여성들이 단두대로 갈 자격이 있다면 의회로 갈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드 구즈의 이러한 언명이 아렌트나 아감벤이 제시하는 인권의 아포리아를 벗어나게 해주는 논리라고 말한다. ... "여성들은 권리선언 덕택에 자신들이 가진 권리가 박탈당했음을 증명해 보링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공적인 행위를 통해서 헌법이 거부했던 권리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음을, 자신들의 권리를 행샇ㄹ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167쪽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의 봉기, 또는 심지어 영속적 봉기라는 관념에 준거해야 한다. 이는 인권의 정치가 불평등과 압제에 대항하여 모든 가능한 형태로 봉기하는 사람들의 행위이며, 또한 그러한 정치는 자유 없이 평등 없고 평등 없이 자유 없음을 실천적으로 주장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누구도 그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해방될 수 없지만 또한 누구도 다른 사람들 없이는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발리바르, 170쪽


랑시에르가 보기에 불평등이란 사회경제적 자원의 비대칭적 배분 이전에 바로 이런 감각상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타인을 자신의 말을 알이듣는 자, 그의 말을 내가 진지하게 경청해야 하는 자로 감각하지 않는 사태, 혹은 타인의 말을 내가 알아들을 수 없고 내 말이 그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감각하는 사태가 바로 모든 불평등에 전제된 불평등이다. 그런데 아벤티누스 언덕에서는 이러한 불평등 전제가 깨져 버렸다. 귀족은 자신들의 대표를 보내 평민들에게 말을 건네야만 했다. 그리고 평민들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평민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음을 전제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그리파가 창작한 우화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말이 들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음을 보여준다. 그 전제가 바로 평등이다. 그 평등이란 "말하고자 함과 듣고자 함보다 앞서는 평등"인 것이다.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항상-이미 내가 말을 건네는 대상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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