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사람들』(김성희 외 5명, 보리, 2012)

『가난의 시대』(최인기, 동녘, 2012)

『보이는 용산, 보이지 않는 용산』(김일태 외 5명, 마티, 2009)

 

 

기자가 찾아왔다. 기자는 두리반을 열 때 얼마가 들었냐고 물었다. 건설사가 제시하는 배상액은 얼마였냐고 물었다. 기자의 물음은 후졌다. - 유채림(두리반 철거민, 소설가)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삼십여 명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지었고 그 다음날인 1월 20일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 한 명이 주검이 되어 내려왔다. 그해 여름 나는 회의를 하러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순천향대학병원에 갔다. 병원 영안실 5층은 고인이 된 철거민 다섯 분의 빈소이자 유족들과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지명 수배자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담배를 피울 때면 창문 너머로 용산 미군기지 운동장이 내려다보였다. 어느 날은 서양 아이들이 거기서 야구를 하기도 했다. 하루는 회의를 마치고 전철연, 당시 여당 국회의원의 말을 빌리면 “죽음을 팔아 장사를 해먹는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무심히 자신의 부모님 동네도 재개발 구역이 되었다는 말을 꺼내자 철거민 한 명이 “그냥 얼마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나와요.”라며 농을 쳤다. 다른 철거민은 “아이고, 부족하면 제가 보태겠습니다, 하고 나오는 게 상책이죠.”라며 한 술 더 떴다. 다들 헛헛한 웃음을 웃고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그 무렵 많은 이들이 용산참사 현장만큼이나 순천향대학병원을 찾았다. 그 중에는 한 무리의 만화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해서 용산참사 1주년에 『내가 살던 용산』(김성희 외 5명, 보리)이란 만화책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국무총리가 유족들을 찾아와 사과하고 장례도 치렀다. 생존자들은 징역을 살러 감옥으로 갔고 부상자들은 아직도 치료를 받거나 수술에 재수술을 거듭하고 있다.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허물어졌고 지상 4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던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다. 하루 늦어질 때마다 500만 원씩 지체보상금을 물도록 계약했던 그 ‘다급한’ 공사는 여전히 굼뜨기만 하다. 용산 유족들의 이야기로 만화를 그렸던 작가들은 또 다른 용산을 찾아 나섰다. 그 책이 바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용산을 지키는 사람들

 


서울 용산구 신계동, 고양 일산구 덕이동, 부천 원미구 중3동, 성남 수정구 단대동, 서울 동작구 상도4동……. 도처에 있는 ‘용산’은 눈물겹다. 자신이 거둬들인 길고양이와 딸이 키우던 햄스터까지 용역깡패에게 죽임을 당하고, 집도 허물어져 이제 더는 잃을 것이 없어진 뒤에야 거짓말처럼 가슴통증이 나아졌다는 정아 엄마는 자신의 집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e편한 세상’ 아파트 앞을 아직도 떠나지 못한다(유승하, ‘니 편한 세상’). 용산 망루를 지을 때 힘을 보태려 함께 올랐다가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3년째 징역을 살고 있는 김창수 씨. 그의 아내 수영 씨와 아들 은찬이, 은수는 매일매일 악몽과도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여기도 용산처럼 누가 죽어 나가야, 우리가 죽어야 관심을 가져줄까요?”라고 묻는 수영 씨의 동료는 전기까지 끊겨버린 천막에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지만 떠날 곳을 찾지 못한다(김홍묘, ‘갈 곳이 없다’). 어엿한 가구업체 사장님에서 하루아침에 세 딸과 함께 철거민으로 전락한 덕이동의 마지막 철거민 김명자 씨.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작가는 “나는 지금껏,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었던가?”라며 탄식하지만 그 나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이기에 페이지는 온통 새카맣게 칠해졌다(심흥아 '그 길 옆에').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용산에서 이 나라 공권력이 벌인 잔인무도함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또 다른 용산, 수많은 용산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떠날 수도 물러날 곳도 없는 이 처절한 싸움의 기록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존엄은 결코 철거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인간의 역사에서 토지소유의 불평등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심화되었는지(김수박, ‘땅따먹기’), 한국 사회에서 철거와 재개발의 역사와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꿈결같은’, 김성희). 오늘날 철거민의 현실과 주거권의 이해를 위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은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앞마당,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분향소 옆 상황실에서 최인기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전국노점상연합과 전국빈민연합에서 활동했던 빈민운동가다. 용산참사 후 그는 “시대별로 도시빈민운동의 주동력이었던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이 과정 속에서 사라져간 열사들의 희생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인터넷 언론매체 <참세상>에 ‘우리사회 빈문운동사’라는 연재를 시작했고 『가난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였다.


1부 ‘대한민국 도시빈민운동사’는 일제시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각 시대별로 도시빈민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도시빈민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또한 그동안 민주화운동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1960년대 광주대단지 사건과 1970년대 무등산 타잔 사건, 1980년대 상계동 투쟁과 같은 사건들이 전체 빈민운동의 흐름 속에서 조망되고 있다. 그리고 이재식, 최정환, 이덕인, 최옥란 열사 등 빈민운동 가운데 목숨을 잃었던 이들의 삶과 죽음이 빈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무슨 숙제를 남겼는지도 정리해놓았다.


2부 ‘도시빈민운동, 어디로 가야하는가?’는 현재 도시빈민의 현황과 주거정책, 그리고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룬다. 시대 상황과 운동의 발전에 따라 분화되었던 빈민운동 조직의 변천사와 함께 사회변혁 운동에서 철거민과 노점상의 계급적 지위는 과연 무엇인지, 이들은 어떤 역할을 요구받았으며 또 감당해왔는지에 대한 분석은 한국 사회운동이, 그리고 그 한 축으로서의 빈민운동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한 운동가의 활동경험에 바탕을 둔 기록인 만큼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와 해석, 많은 논쟁거리를 안고 있다. 또한 빈민운동으로 조직조차 되지 못했던 전쟁고아나 행려병자, 넝마주의, 그리고 IMF 이후 등장한 홈리스 운동이나 이주민 운동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 책이 철거민과 노점상을 중심으로 한 도시빈민운동사란 점에서 이런 허물을 저자에게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도시빈민, 더 나아가 배제되고 가려진 채 그 존재마저도 부정당하는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폭 넓고 깊이 있는 기록과 연구가 이 책을 계기로 꾸준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펴낸 『보이는 용산, 보이지 않는 용산』은 흥미롭다. ‘서울학모노그래프’(모노그래프는 하나의 사회적 단위를 구조적, 다차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시리즈의 두 번째로 역사학, 사회학, 도시행정학, 조경학, 도시공학,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용산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물자가 모이는 요충지였던 용산이 일본인에게 점거당하는 과정과 그 가운데 현지민의 저항, 러일전쟁을 명분으로 용산에 대규모 군사기지가 들어서게 된 사연(양승우 ‘일제시대 일본인의 용산 점유과정’), 미군기지와 철도로 인해 단절되고 파편화된 공간으로서의 용산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김한배, ‘보이지 않는 경관, 상흔에서 희망으로’), 용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이 사유화될 위험에 대한 지적(서우석, ‘용산개발의 사회학’)과 이태원의 이슬람 음식점을 통한 도시공간의 미시적 분석(송도영, ‘음식 문화의 영토성을 통해 본 이태원 공간의 문화적 다원화’)까지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장소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용산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용산 개발 과정에서 제트리피케이션(도시 빈곤계층이 많이 사는 지역이 개발되면서 부유한 계층이 유입되고 땅값이 올라 빈곤층이 내몰리는 현상)을 우려하는 부분은 마치 참사를 예견한 듯하다. 그러하기에 “남산과 한강이라는 서울의 지배적 자연환경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자 “근현대사의 상흔들을 압축적·중측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지역”(40쪽), “20세기 근대사의 왜곡으로 폐쇄와 단절과 분열의 도시구조를 떠안게 되었던” 용산이 “총체적 단절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64쪽)는 구절은 용산과 서울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이 땅, 구체적 장소로서의 생활공간에서 어떤 삶을 꾸려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장소는 사건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사건은 특정 장소에서 발생하지만 그 장소를 넘어설 때 비로소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용산참사 이후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과 판화, 사진과 만화, 시와 노래가 용산을 다루고 있다. 그 까닭은 용산이 이 시대의 욕망과 성찰의 어떤 지점, 그 핵심과 맞닿아 있는 동시에 그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용산참사의 실질적인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총선에 출마하자 유족들은 그의 낙선을 위해 경주로 급히 내려가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족들은 김석기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에 경찰의 진압은 정당했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고 오열했다. 일주일 뒤 유족들은 서울로 돌아와 대한문 앞에 마련된 스물두 명의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희망지킴이’로 참여했다. 이 모욕과 위로,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그로테스크한 현실, 우리가 건너고 있는 용산의 모습이다.

 

 

- 실천문학 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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