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정작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 것 같다. 10년 전에 쓴 글을 묶은 것인데 물론 지금에도 시사점이 많다. 센델의 공동체주의와 그 한계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고. <정치제에 대한 권리>를 읽다가 끌려서 이 책으로 왔는데 발리바르의 <반폭력의 정치>나 절판되었다는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까지 가보고 싶어진다.

 

아래는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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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우리'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구성한다. 정치적 담론에는 항상 행위 과정에 대한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특정 형식의 집단적 행위를 통해 창출되어야 할 '우리'라는 정체성을 사실상 핵심 문제로 간주할 수 있다. (85)

 

현대 정치의 특징을 이루는 투쟁 가운데 일부는 일정한 질서를 구축하려 하는 결절점들 주위에 사회적 관계들을 고정하려 하지만, 적대적 힘들의 영속성으로 말미암아 고정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분적이며 불확실하다. 정의와 관련된 담론들이 그런 투쟁에 속한다. 그것들이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대한 경쟁적인 해석들을 제안함으로써 상이한 유형의 요구들을 위한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하며, 특수한 동일화 형식을 창조하고, 정치적 힘들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것들은 어떤 주어진 순간에서 특정 헤게모니의 설립과 '시민권'의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공한 헤게모니는 상대적인 안정화의 시기와 폭넓게 공유된 '상식'의 창조를 의미하지만 (...)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정의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평등과 자유라는 정치적 원칙들을 둘러싼 가능한 해석 가운데 한 해석에 불과하다. (90)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철학은 토대들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은유적인 재기술을 제공하는 언어의 정교화여야 한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형이상항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모체 내에 새로운 주체 위치들을 창출하여 민주주의적 관행의 범위를 심화, 확장하는 식으로 민주주의를 옹호할 수 있게끔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97)

 

시민권을 법적 지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형성의 한 형식으로, 정치적 정체성의 한 유형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즉 시민권을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축되어야 할 무언가로 본다는 뜻이다. (108)

 

정치학이 어떤 정치적 공동체의 구축, 어떤 통일성의 창출을 겨냥하더라도,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어떤 '구성적 외부', 즉 공동체의 바깥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에 완전히 포괄적인 정치 공동체, 다시 말해 어떤 최종적인 통일성은 결코 현실화 될 수 없다. (114)

 

나는 근대적 개인의 범주가 모든 특수성과 차이를 '사적인' 것으로 추방하는 어떤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공중'을 가정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왔으며, 이것이 여성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페이트먼의 의견에 동의한다. (132)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 시민권 통념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지만, 개인이 국가에 반해 보유하는 권리들을 가리키는 단순한 법적 지위로 시민권을 축소했다. 권리의 보유자들이 법을 위반하거나 타인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는 한 그 권리들이 행사되는 방식은 문제가 안 된다. (...) 게다가 근대 시민권의 공적 분야는 분리와 적대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특수성과 차이를 사적인 것으로 추방하는 보편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개인적 자유의 주장에 핵심인 공과 사의 구별은 강력한 배제 원칙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공과 사의 구별은 사적인 것과 가사를 동일시함으로써 여성의 종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5)

 

급진 민주주의적 해석은 다른 '신사회운동'은 물론 여성, 노동자, 흑인, 동성애자, 생태주의자 등 각종 참여 세력에서 발견되는 민주주의적 요구를 접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 목표는 급진적 민주주의의 시민들로서 하나의 '우리'를 구성하고, 민주적 등가성의 원칙을 통해 접합된 하나의 집합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때 그 등가 관계가 차이를 제거하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차이가 제거되면 단순한 정체성이 될 것이다. 민주적 차이들이 모든 차이를 부정하는 세력이나 담론들과 대립하는 한에서만, 그 차이들은 서로 대체될 수 있다. (137)

 

완전히 포괄적인 정치 공동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구성적 외부' 즉 공동체의 실존 조건 자체인 그 공동체의 바깥은 항상 존재한다. '그들'이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으며, 합의의 모든 형식은 필연적으로 배제 행위에 근거하고 있음이 받아들여지고 나면, 적대와 분할과 갈등이 사라지게 될 완전히 포괄적인 공동체으 창출은 더는 쟁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감수해야 한다. (138)

 

나에게 여성주의는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이다. 하지만 이는 공동의, 다시 말해 여성적 본질과 정체성을 지녔다고 규정될 수 있는 경험적 집단의 평등을 실현하려는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의 범주를 종속적인 것으로 구축하는 다양한 형식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42)

 

현대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그것의 정치적 원칙들에 대한 특정한 해석, 곧 시민권을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에 대한 공통의 동일시를 통해 하나의 통일성을 정치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철학의 중요한 역할은 정치나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통념들에 대한 참된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통념들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을 제안하는 것이다. (184)

 

급진적이고 다원직인 민주주의 기획이라면 정치적인 것 내에 있는 갈등과 적대의 차원을 받아들여야 하며 가치들의 환원 불가능한 다원성이라는 결론을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급진화하며 사회적 관계들로 민주주의 혁명을 확장하려는 우리 시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 과제는 사회적 관계들에 내재한 폭력과 적의의 요소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격적인 힘들의 분산과 전환이 가능하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질서가 가능할 조건들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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