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참 많습니다. 가끔 들리게 되는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가면 잡지의 숲에 있는 듯합니다. 정부기관에서 나오는 홍보물(육군, 공군, 해군에서 따로 잡지가 나오는데 총천연색 그야말로 삐까번쩍합니다), 지자체 등에서 나오는 지역홍보잡지, 매우 세련되고 볼 거리도 많은, 이른바 '사보'라 불리는 기업잡지, 문예지, 시사잡지, 의료와 교육, 과학 등등의 전문잡지와 각종 학술단체에서 내는 학술지...

한국에 잡지 종류가 몇 가지나 될까요? 한국잡지협회에 따르면 문광부에 등록된 정기간행물 수가 4500여 가지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요. 여기에 각 단체나 동호회에서 발간하는 간행물, 소규모 비정기간행물까지 더하면 족히 만권은 훌쩍 넘을 것 같습니다.

주워들은 이야기지만 이 무수한 잡지 중에 흑자를 내는 잡지는 정말 드물다고 합니다. 어느 날 미용실에 갔다가 우먼OO인가 여성OO인가 하는 잡지를 들춰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A4 크기에 웬만한 사전 두께의 올칼러 잡지가 단돈 6천원! 제가 만드는 잡지와 같은 가격이라니... 글보다 광고가 더 많고 잡지를 읽는 독자도 글보다는 광고를 보려고 읽으니 광고료에 기댄다면 6천원에 사은품까지 듬뿍 얹어주어도 밑질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광고에 기댈 수 없는(또는 기대지 않는) 잡지는 여간 살림살이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미 여러 해 전에 광고주들이 모여 시사월간지에 광고를 줄이기로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7~80년대 시대를 풍미했던 시사월간지였지만 이제는 그 독자층이 더 이상의 구매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매달 창간하는 잡지가 열댓개인 반면 폐간 잡지는 수십가지라고 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인구는 두배지만 잡지 시장은 열배가 넘고 가장 많이 팔리는 <문예춘추>는 45만부에 달한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지요.

팔리지도 않고 영향력도 없고 게다가 재미까지 없는 인권잡지를 만드는 저를 만날 때마다 제 친구는 늘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각종 운동권 잡지를 통폐합해서 메트로처럼 만들어 무가지로 뿌려야 한다고 말입니다.(주로 지하철역에서 뿌려지는 무가지는 하루 한 종류 당 발행부수가 수도권에서만 4~50만부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도 몇 해전에 들은 이야기이니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목소리를 널리 알릴 것인가를 고민할 때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몇 백 페이지짜리 두떠운, 글자만 빼곡한 운동권 잡지를 나눠준다면 사람들이 받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더 큰 걱정은 그 가운데 없어지거나 줄어들 다양성입니다.

제가 돈을 주고 사보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 사무실로 날아오는 잡지도 상당하고 이메일로 들어오는 웹진도 참 많습니다. <인물과 사상> <녹색평론>에서부터 장애운동 언론의 선구자격인 <함께걸음>, 전쟁없는세상이란 평화단체의 소식지(이번호 특집은 '군사주의, 기후변화를 말하다'라는 매력적인 주제를 다뤘군요), 늘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되는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나오는 <랑>이란 웹진, 인권운동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인권오름>... 이렇게 적다보니 어딘가를 빼먹고 욕을 들어먹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잡지가, 인권잡지가 자본과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보다 널리 읽히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 아니 되도록이면 무료로 배포되는 것은 너무나도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백인백색. 이웃나라 일본에서 2만7천명이 이번 지진으로 사망 또는 실종했다고 합니다. 이건 달리 말해 2만7천여 개의 생명과 역사와 목소리가 사라졌음, 찾을 수 없음입니다. 이들이 그저 지진 피해 상황판에 적힌 숫자에 갇히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듯 인권잡지는 인간의 존엄성에 다가가는 수없이 많은 갈래길을 찾아나서야 하겠지요. 그래서 운동권 잡지의 통폐합을 꿈꾸기보다는 더 많은 인권잡지가 생겨나고 더 많이 더 싸게 발간되는 날을 꿈꾸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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