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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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어느 봄날 이딸리아 또리노에서 쁘레모 레비(Primo Levi)라는 이름의 화학자이자 문학가가 자살했다. 일흔을 앞둔 나이. 유대인으로 태어나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한명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은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증언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왜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와, 그것도 40년도 더 지난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을까?
 

1996년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도쿄경제대학에서 교수가 된 서경식은 가슴 속에 이러한 의문을 품고 이딸리아로 건너가 그의 무덤을 찾는다. 그가 쁘레모 레비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서울로 유학을 간 그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9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큰형 서승은 모진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할까 두려워 난로를 껴안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끝에 온몸에 중화상을 입어 엄지발가락으로 지문날인을 해야 했으며 작은형 서준식은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기를 마쳤음에도 감옥에 갇혀 옥중테러를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쁘레모 레비가 전하는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읽어 내려갔다. 
 

아우슈비츠의 잔혹함을 어떻게 글로 다 옮길 수 있을까. 객차 양쪽 문을 열어 이쪽 문으로 내리는 사람은 가스실로 다른 쪽 문으로 내리는 사람은 수용소로 보내졌던 곳, 말 한 마디에 생사가 엇갈리고 신발과 외투가 생사를 결정지었던 곳, 7톤의 머리카락과 100만 벌의 의복들이 쌓였던 곳, 유대인을 비롯해 장애인, 성소수자, 집시 등 최소 250만명이 가스실에서 죽었고 50만명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 속에서 죽어갔던 곳. 
 

거기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와 끊임없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라는 부끄러움 사이에서 고민하고 번뇌해야 했던 쁘레모 레비에게 닥친 현실은 잔인한 것이었으리라고 서경식은 전한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만들어진 이스라엘이 또 다른 모습의 학살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독일의 수정주의 역사논쟁-잘못은 독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이 시작되었다. 쁘레모 레비는 이스라엘이 파시즘적 방향으로 가는 것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이른바 “가스실은 없었다”는 황당무계한 아우슈비츠 부정론을 접했을 때 레비가 어떤 비판을 할 수 있었을까? 
 

2010년 오늘, 이스라엘은 다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10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던 한국전쟁은 어떠한 성찰도 없이 다시금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 기념되고 있다. 쁘레모 레비는 히틀러 치하 독일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하지 않는” 불문율이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혹시 비슷한 불문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에 대해, 학살에 대해, 그리고 평화에 대해 말하고 질문하고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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