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백기 들어!, 청기 들어!' 하는 게임이 유행한 적 있다. 어떤 신문기사를 보니 천안함 사건의 정부 발표를 한국인 70% 정도가 믿는다고 한다. 그럼 나는 30%에 속하는데 그나마 나 같은 사람이 30%나 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치 청기백기 게임을 강요받는 느낌이다. 아래는 한 블로그에 댓글로 적은 글이다.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해외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은 MB정부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어떤 맹점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분야의 누구인지도 전혀 알고 있지 못하며(아직 민군 조사단 명단도 발표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사단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니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전문가는 그 전문성으로 인해 전체에 대한 통찰,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에 더 쉽게 빠지는 반면, 일반인에게는 전문가들이 검증했으니... 라고 하는 거짓된 믿음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일일수록 상식에서 출발해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어차피 그네들의 잔치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이 뭐 대단한 것인 양 취급하는 풍토가 그리 보기 좋지만은 않다. 신화로 승격된 월드컵 4강, 박세리-박찬호-박태완-김연아로 이어지는 스포츠 '월드' 스타들의 행렬, '세계적인 국가 브렌드'로 떠받들여지는 삼성, 그리고 해마다 꼴불견이 연출되는 노벨문학상 유력 운운하는 헤프닝까지. 이 모두 지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분단되어 망망대해에 섬이 되어버린(섬나라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후진국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넓지 않은 땅덩어리에 인구만 많은, 그 인구가 너무 많다고 호들갑, 줄어든다고 호들갑을 피우는 '대한민국'의 소아병 증상 같기만 하다.  

그래도, 그러하기에 최소한의 상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상식이 조금씩, 더디지만 천천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 나라 인민을 학살하고 권좌에 오른 독재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상식,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상식, 민주주의와 인권이 최소한 이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가치라는 상식.  

이창동 감독의 <시>는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에서 0점을 받은 작품이란다. '대한민국' 영진위가 칸 심사위원들보다 더 엄격하고 예술적인 식견이 높다면 그보다 이놈의 '대한민국'이 더 자랑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영진위가 그간 해온 작태에 비춰보자면 이 또한 상식에 반한다.  

잠수함을 찾아내는 초계함이었던 천안함이 잠수정의 어뢰에 맞아 피격되었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으면 잡혀가는 세상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대한민국이다. 이미 미네르바가 있었고 정연주, PD수첩,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가 있었고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상식에 반하는 일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전혀 새로운 일이 되지 못한다. 아니 상식적이지 못한 일이 일상이고 다반사다.  

바야흐로 선거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투표로 말하라"는 단 하나의 상식만이 거리 곳곳에 내걸리고 있는다. 나는 이 선관위 홍보물을 볼 때마다 "투표만 하고 그냥 닥치고 있어!"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투표로 복수하자'는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내 생각에는 투표는 그저 아주 작은 한 부분의 원상복구(그것도 잘 된다면)일 뿐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투표로 말해야 하고, 그럴 것이지만 결코 투표만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거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p.s 미국 독립혁명에 지대한 영항을 끼친 토마스 페인의 <상식, 인권>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왜 세습 군주제를 반대하는가? 그 아버지가 왕이었다고 해서 그 아들이 국가를 더 잘 통치할 것이란 이유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일가와 서울대 입학생에서 보듯 이미 이른바 '자유대한'에서 부와 권력은 세습되고 있다.     
이 책이 고전인 까닭은 도처에 상식에 반하는 일이 행하여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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